이데일리

  • 뉴스레터 신청
  • FAMILY SITE



[단독]27년전 '임을 위한 행진곡' 예술의전당 객석 울렸다…"유일무이"

입력시간 | 2017.05.18 09:44 | 김미경 기자  midory@edaily.co.kr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1990년 민족음악연구회 기획 무대
이민주 편곡, 이소영·라해진 피아노 연주
'두대를 위한 피아노' 기악곡으로 들려줘
최근 20년간 예당서 다시 연주된 적 없어
"예술의전당서 악단연주 기회 생겼으면"
[단독]27년전 `임을 위한 행진곡` 예술의전당 객석 울렸다…`유일무이`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원본(사진=5·18기념재단).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소위 운동권 민중가요가 기악곡으로 바뀌어 예술의전당에 연주되었던 첫 번째 시도였을 겁니다. 클래식 전공자 집단이 제도권 무대인 예술의전당에 민중가요를 들고 올랐던 것도 유일무이할 거예요.”(이소영 평론가)

1990년 9월 29일 무려 27년 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됐다. 당시 음악계 재야격으로 불리던 민족음악연구회가 기획한 무대였다. 민족음악연구회는 기존 굳어진 형식과 반성 없는 예술행위에 반발해 1984년 4월 창립한 음악연구단체다. 작곡가 이건용·노동은·이강숙·소프라노 윤인숙 등 국내 대표 음악가들이 참여해 4.19계승 및 광주항쟁계승 공연, 양심수를 위한 공연 등 대중적 활동을 펴왔다.

한양대 작곡가 출신인 이민주 씨가 ‘두대를 위한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고, 퍼스트 피아노와 세컨드 피아노 각각 라해진, 이소영 씨가 맡았다. 당시 직접 피아노를 연주한 이소영 평론가는 이날의 무대를 “벅차고 감격스러웠다”고 기억했다.

이 평론가는 “90년대 클래식 전공자들이 모여 전문성을 발휘해 사회 현실에 기여할 수 있는 고민을 많이 했다”며 “피아니스트로서도 민중노래를 기악곡으로 연주할 수 있는 첫 시도였던 만큼 의미 있었다. 연주자로서의 도전할만한 곡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객들은 클래식 청중이 아닌 일반 대중이 많았다. 모두 귀기울였다”며 “당시 민중가요계에서는 큰 사건이었지만 클래식 청중들은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클래식 공연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국내 만화가 허영만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연 것도 2015년 최근이다. 조영남이 데뷔 40년을 맞아 대중가수 최초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 것도 2008년. 하지만 ‘화개장터’ 등 대표 레퍼토리를 빼야만 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업예술’ 꼬리표를 단 뮤지컬 역시 오페라하우스 대관이 불가능했다.

이 무대 이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연주된 적은 있을까. 예술의전당 측에 따르면 없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기록된 기획공연 목록을 살펴봤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된 적은 없었다. 예술의전당 내 오래 근무했던 직원을 대상으로 알아봤지만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다. 최근 20년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된 무대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부천시립교향악단 등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내 무대에서 연주한 적이 없다고 했다. KBS교향악단의 경우 2011년 5월18일 광주 1.18민주묘역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 기념연주회’를 열고 하성호 편곡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한 바 있다. 당시 함신익 지휘자가 이끌었으며 KBS1TV를 통해 생중계했다.

클래식 관계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니지만 정명훈 지휘자가 서울시향 상임지휘자로 있을 당시 최성환의 ‘아리랑’을 자주 연주했었다”며 “‘아리랑’ 연주를 들을 때도 울컥한 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클래식 청중으로서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을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 전남대 경영학과 학생이었던 김종률 현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1982년 5·18 2주기를 기념하는 문화제를 준비면서 만들었다. 소설가 황석영의 제안으로 제작한 30분 분량의 노래극 ‘넋 풀이-빛의 결혼식’의 마지막 곡으로 처음 쓰였다. 노랫말의 모태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의 장편시 ‘묏비나리’이다. 1979년 말 YWCA위장결혼식사건의 주모자로 붙잡혀간 백 소장이 모진 고생을 하며 서울 서대문구치소 옥중에서 1980년 12월 지은 15장의 장편 시(詩)다. XML:Y

독자의견

오픈 로그인계정을 선택해 로그인 해 주세요.
이데일리 계정 또는 소셜 계정으로 로그인하시면
의견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이데일리
  • 네이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
  • 카카오스토리
닫기

신고사유

신고하기취소하기

* 허위 신고일 경우 신고자의 서비스 활동이 제한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어 신중하게 신고해 주세요.


이시각 주요뉴스

뉴스 카테고리별 이동









    INSIDE MOBILE - 이데일리 모바일 서비스 앱

    • 이데일리
      실시간 뉴스와
      속보를 어디서나
    • 이데일리MVP
      금융정보 단말기의
      모바일 서비스
    • MP 트래블러
      차세대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
    • 스타in
      연예·스포츠 랭킹 매거진
    • 전문가방송
      증권 전문가방송을
      스마트폰으로

    INSIDE FOCUS - 이데일리 사업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