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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돌출' 비밀 풀다…"계란머리 싫어!"

입력시간 | 2017.05.17 00:15 | 오현주 부장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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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지적 허세 부리는 사람'
1950년대 미국서 퍼진 반지성주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밑거름 돼
권력 중추 지식인 향한 반감 여전
제2트럼피즘 발생 가능성 열어놔
……………………………………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680쪽|교유서가
`트럼프 돌출` 비밀 풀다…`계란머리 싫어!`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 유행어가 떠돌았다. ‘계란머리’(egghead). 원래는 고상한 척하는 교양인이란 뜻이었다. 그냥 ‘좀 거슬리는’ 인물. 그런데 선거운동이 진행될수록 경멸의 뉘앙스는 짙어졌다. 종국엔 사전식 풀이까지 생겼다. 소설가 루이스 브롬필드가 확실하게 해뒀다. ‘그럴듯한 지적 허세를 부리는 사람. 보통은 대학교수나 그 추종자를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천박하다. 건전하고 유능한 이들의 경험을 경멸한다. 사고가 혼란스럽고 감상주의와 맹렬한 복음주의에 매몰돼 있다.’ 그러곤 대문짝만하게 방점을 찍는다. “최근 선거에서 많은 문제가 드러났는데. 가장 중요한 건 계란머리가 대중의 생각·정서와 한참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재미있는 건 그해 대선에 당선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 행사에서 계란머리를 공식적으로 ‘깼다’는 것이다. “지식인이란 자기가 아는 것 이상을 말하기 위해 필요 이상의 말을 내뱉는 사람이란 겁니다.”

당시 미국의 공직사회에는 계란머리를 배척하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한 예만 볼까. 1954년 상원군사위원회에 나선 찰스 윌슨 국방장관은 이런 주장을 했다. 순수이론 연구에 대한 자금지원은 국방부가 아닌 다른 기관에서 해야 한다고. 그러곤 “아무리 중요한 군사연구라도 감자를 튀기면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놀란 상원의원들이 “감자가 아니라 폭격기, 핵추진 장치, 미사일, 레이더 이런 연구의 예산이 부족한 거라고요”라며 다그쳤지만 국방장관을 설득하진 못했다. “그들은 그저 큰돈을 반깁니다. 무엇을 달성할지 관리·감독은 별로 하지 않으면서요. 애초에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안다면 그건 순수연구가 아니지요.”

최소한 1950년대 미국의 공직사회는 소위 지식인이 ‘나대는 꼴’을 봐줄 인내심이 없었던 거다. 특히 과학연구소나 대학·외교집단 등 자신들의 세력범위 바깥에서 활약하는 전문가에 대한 의구심은 대단했다.

왜 새삼스럽게 1950년대 ‘안티 지식인’이냐고? 반백년을 훌쩍 넘긴 옛날 얘기라고 무시해버릴 수 없는 정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즈음 미국서 본격화한 ‘반지성주의’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배경이 된 것이다. 게다가 한 번뿐이란 장담도 못한다. 앞으로도 유사한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오를 개연성까지 열어놨다.

바로 이 대목에서 책은 단순치 않은 읽을거리가 된다. 미국 유명역사가인 리처드 호프스태터(1916∼1970)가 1963년에 저술한 역작. 1964년에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선 처음 번역했다. 번역이 늦어진 건 700쪽에 달하는 분량에다가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내용의 방대함에 압도당한 탓이 컸을 거다.

저자는 건국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종교·경제·교육·문학 등을 전방위로 헤집으며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으로 미국사를 꿰뚫는다. 겉으로는 미국인의 삶에서 지성에 쏟아지는 멸시의 속내가 뭔지를 알아내겠다고 했지만 속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성이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말하려 한 거다.

▲지성과 속물의 대결…지식인은 기업의 숙적?

1950년대 매카시즘, 1952년 대선의 밑바탕에 흐르는 대중적 정서. 저자는 이 두 축에서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을 포착했다. 사실 본격적인 지성주의의 기류는 대공황시절부터였다. 1930년대 뉴딜정책은 전문가로서의 지식인이 권력의 중추에 달라붙는 계기가 됐으니. 그런데 너무 강했나. 2차대전 이후 냉전이 시작되며 이데올로그로서의 지식인이 사회를 전복하려는 위협세력처럼 보인 거다. 매카시즘은 그들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폭발한 것이고.

공직사회에서만이 아니었다. 기업 정서에서도 지식인은 공공의 적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운을 뗀다. “최근 75년(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1888∼1963년쯤 될 거다) 동안 미국의 대다수 지식인은 기업을 지성의 숙적으로 낙인찍어왔다.” 예컨대 당시 발표한 소설 속의 기업가는 하나같이 우둔하고 교양 없고 탐욕적이고 부도덕한 부류였던 거다. 그러니 기업가의 눈에도 그들이 곱게 보일 리 없다. 미국에서 기업가가 누군가. 특히 산업화시대 기업가는 갑 중의 갑이었다. 국가이념처럼 흘러내린 프런티어정신이니 아메리칸드림은 ‘정신·드림’이 들어간 명칭과는 달리 부국을 만드는 실용주의와 직결됐으니.

저자는 양쪽의 대립을 서로의 기질이 다르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다른 가치를 지향하니 반목은 당연하다는 거다. 왜 유독 기업이냐에 대한 부연도 붙였다. 다른 부문에 비해 더 반지성적이거나 속물적이서가 아니란다. 기업이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강하고 폭넓은 관심을 유발해서란다. 경제적으로 가장 번성한 시기에 반지성주의가 요동을 친 이유기도 하다.

▲“정치의 타락은 지성의 타락”

‘뭘 믿고 저러나’ 싶은 기업가 출신 트럼프의 돌출행동은 미국의 단면 그대로를 투영한다. 반지성주의 부류 증 극히 강력하고 중심적인 위치여서 가능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극우 보수주의 정치와 단단히 결합한 반지성주의는 여건만 됐다 하면 튀어올랐다. 이른바 ‘지성’과 ‘속물’의 대결이 1952년 대선 이후 지속됐던 셈이다. 아이젠하워에 이어 앨 고어와 맞선 조지 W 부시가 당선됐고,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대결로 정점을 찍었다. 클린턴은 지성주의의 기치를 치켜든 인물. 그러나 대중의 표심은 그 ‘헛똑똑이’의 반대급부인 트럼프에게 뿌려졌다. 사실 트럼프는 저자가 꼽은 반지성주의의 특징을 성실하게 갖췄다. 원시주의, 지성 경멸, 노골적인 성공밝힘증 등.

지식인을 싸잡아 덮어씌운 계란머리에 대한 반감을 들춰냈지만 저자는 반지성주의가 계란머리와 멍텅구리의 싸움만은 아니라고 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지식인·전문가가 권력·금력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앞장서는 거다. 순수성을 유지한답시고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것도 바람직한 모양은 아니다. 정치의 타락도 걱정이다. 왜? 정치가 타락한 건 결국 지성이 타락한 결과니까. 유추하자면 기업가 출신인 대통령이 잘못했더라도 기업도 정치도 아닌 지성이 잘못한 탓이란 거다.

무엇이 됐든 ‘이즘·주의’로 기우는 게 좋을 건 없다. 그걸 눈치챘는지 저자는 어떤 신조를 위해 매진하는 사람이 미래를 온전히 지배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밑밥을 깔아뒀다. 과연 그런가. 정말 그의 말대로 역사가 흐르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XM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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