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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기업 프렌들리’의 추억

입력시간 | 2017.06.09 06:00 | 허영섭  gracia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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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철학인 ‘소득주도 성장론’은 기존 기업성장론과 접근 방식이 상당히 대비된다. 경제성장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 개개인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견인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 개념이다. 기업 성장을 통해 파이를 키우고 그 파이를 나눠먹는다는 ‘낙수(trickle-down) 효과론’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서 기업이 소외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득성장론은 이미 새 정부의 경제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높이는 한편 정부가 직접 고용주가 되어 공무원을 획기적으로 늘린다는 ‘J노믹스’가 바로 그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도 배경은 다르지 않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일자리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현황판이 설치된 데서도 소득성장론을 바탕으로 하는 문 대통령의 정책 의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역대 대통령이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기업성장을 추구해 왔지만 의도한 만큼 성장을 이룬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른바 ‘747공약’에 따라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폈으나 실패하고 만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뒤를 이어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슷한 내용의 ‘줄푸세’ 정책으로 경제 활성화를 추진했으나 결국 빈말로 그치고 말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치권의 발목잡기 등 여러 변수 탓이었지만 정책추진 과정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도 그 과실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실질임금 증가율이 경제성장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증적인 결과에서도 확인되는 일이다. 오히려 물가가 오름으로써 개인의 실질 구매력은 떨어지는 반면 기업 유보금만 쌓이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소득성장론은 지금껏 추진돼 온 기업성장론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지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있어 이의를 제기한 경총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성찰과 반성을 주문하는 눈총이 쏟아진 게 비슷한 맥락이다. 기업이 나름대로 혜택을 받았으면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에 지금 상황이 벌어졌다는 질책이다.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협조한다는 차원에서 의욕적인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하곤 했으나 제대로 실천된 것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정부에서 기업 유보금에 대해 과세하겠다는 특단의 방안까지 마련됐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기업들에게만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렵다. 기업이 투자를 유보하고, 고용을 꺼리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온갖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마당에 신규 사업에 선뜻 투자하겠다며 돈을 풀 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다.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려면 먼저 규제를 푸는 것이 순서다. 규제가 풀리면 투자가 늘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고용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게 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밝혔듯이 일자리 창출 역할은 어디까지나 기업이 중심이 돼야만 한다.

세금을 들여 공무원을 늘리는 방안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다. 소득성장론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언제까지 추경을 편성해가며 고용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고용을 확대해 가계소득을 늘린다고 해도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장롱에 쌓아두는 경우도 감안해야 한다. 취업 및 노후 불안으로 인해 개인 저축도 늘어나는 추세다.

문 대통령의 취임 한 달을 맞으면서 재계 분위기가 얼어붙고 있다. 의사 소통의 통로가 끊긴 때문이다. 대화 통로를 끝까지 닫고 있을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빨리 여는 게 좋다. ‘기업 프렌들리’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논설실장> XM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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