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의 암호화폐 읽기]<23>`투자냐 기부냐`…ICO의 빛과 그림자

ICO, IPO와 달리 의결권·지분 없고 상장기약도 없어
배고픈 예술가 돕는 크라우드펀딩서 출발…기부 성격도
백서만으로 프로젝트 기술력·비전·진정성 판단 불가능
최소한의 규제 필요…기부냐 초고위험 투자냐 판단해야
  • 등록 2018-03-24 오전 7:34:33

    수정 2018-03-24 오전 7:34:33

다오와 퀀텀, 이더리움 등 역대 최대규모의 ICO 프로젝트들. 올해 세일이 진행되고 있는 텔레그램은 포함돼 있지 않다.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앞서 암호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의 개념과 절차를 살펴 봤는데요, 많은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전통적으로 활용해온 벤처캐피털(VC)로부터의 펀딩이나 기업공개(IPO·주식시장 상장)에 비해 매우 편리하게, 그것도 아주 대규모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보자면 ICO는 기업들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IPO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라고 한다면 IPO가 회사 지분으로 표시되는 주식(=의결권이 있는 보통주)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반면 ICO는 프로젝트의 지분인 코인을 판매한다는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주식이 아닌 코인을 왜 판매하느냐가 포인트가 될텐데요, 주식을 발행하려면 금융당국이나 증권거래소가 정해놓은 규제 틀내서 회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투자자 보호 장치까지 마련해둬야 하지만 코인 발행은 대부분 규제 틀 밖에 있다보니 이런 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주식은 상장후 곧바로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뤄져 가치 변동이 나타나지만 코인은 거래소 상장에 기약이 없습니다. 물론 이 때문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비롯한 각국 금융당국은 뒤늦게 ICO의 적절성을 가려내는 규제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결국 ICO는 해당 기업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서술한 백서(Whitepaper)만 믿고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의결권도 없고 주식으로 지분율이 표시되지도 않는 코인을 배정받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흔히 ICO를 `투자(investment)`라기보다 `기부(donation)`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돈을 내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업의 프로젝트가 훌륭하게 추진되고 코인도 거래소에 상장돼 코인 가치가 엄청나게 뛰기를 원하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모 아니면 도가 될 수도 있지만 우리 기술만을 믿고 우리 프로젝트에 기부해 달라`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ICO를 통해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을 지난 2016년 1월부터 올 2월까지 월별로 나타낸 표. 지난해말 한 달에 최대 17억달러 가까이 급증했던 ICO는 올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데이터=ICODATA.IO)


애초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이 ICO의 모태가 됐다는 걸 떠올려보면 비교적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텐데요, 지금은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나 프로젝트에 소액으로 투자하는 게 크라우드펀딩이지만, 킥스타터(Kick Starter)라는 초기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는 배고픈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형 투자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으로 초창기 기업에 자금줄이 되는 벤처캐피털이나 IPO에 접근하기 어려운 기업들에게 ICO라는 기회가 온 셈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제도든지 초기에는 이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구요. 애당초 기술력이 없는 상태에서 자금만 끌어 모은다거나 백서에서 제시한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최대 자금조달 한도인 하드캡(hard cap)을 넘어 과도하게 자금을 모집하고 이를 물 쓰듯 하는 비윤리적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실제 최근 암호화폐 조사업체인 토큰데이터와 비트코인닷컴의 통계를 인용한 포춘지(紙)는 지난해 IC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902건의 프로젝트 가운데 자금 조달 후 실패한 프로젝트가 276건에 이르고 심지어 조달 전에 이미 불발된 프로젝트도 142건에 이르렀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를 합치면 총 418건으로, ICO대비 프로젝트 실패율이 무려 46%에 이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ICO 로 자금을 조달하고서도 실패한 프로젝트로 인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투자자금이 2억3300만달러(원화 약 2510억원)에 이른다는 얘깁니다.

결국 문제는 고작 백서 하나만 읽어 보고서 마땅한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스타트업들이 제시하는 프로젝트의 비전이나 개발자들의 진정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물론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생각으로 ICO에 참여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 인맥을 통해 코인을 판매하는 프라이빗 세일이나 공모 이전에 이뤄지는 프리ICO 세일 이후에 실시하는 퍼블릭(공모) ICO 과정에 참여하는 투자자라면 최소한의 투자자 보호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최근 ICO를 규제하려는 각국 금융당국 역시 같은 문제인식일 것이구요. IPO 만큼은 아니더라도 금융당국이 ICO에 대해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ICO는 철저하게 `고위험 고수익` 투자처로만 봐야 합니다. 아니, `초고위험 초고수익`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잘 되면 세상을 바꿔놓을 만한 기술이나 프로젝트를 구현하는 일에 동참하겠다`며 될 성 싶은 기업에 기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요. 이는 어디까지나 투자자들의 몫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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