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묶은채 영업하라고 하니…설 땅 없는 외국계 운용사

개인영업은 금융지주 계열사 판매집중에 발도 못 뻗어
기관영업은 직접 못해.."요청 있을 때 본사 연결만"
  • 등록 2017-08-17 오전 6:05:00

    수정 2017-08-17 오전 8:16:57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지난 2004년 한국시장에 진출한 피델리티자산운용은 올해 영업부문만 남겨두고 운용부문사업을 철수했다.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도 삼성액티브자산운용과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영업부문 인력 감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12년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철수 이후 또 다시 외국계 운용사의 엑소더스(Exodus)가 시작되고 있다. 공모펀드시장이 위축된 데다 손발 모두 묶인 영업환경이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펀드 설정액 5년간 3분의 1로 줄어

1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JP모간·프랭클린템플턴·피델리티·AB·블랙록·슈로더자산운용 등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운용사의 펀드 설정총액은 지난 11일 현재 9조3600억원으로 5년여전인 2012년말(14조1600억원)에 비해 34% 가량 감소했다. 펀드 설정액이 줄면서 실적도 쪼그라들었다. 2009년까지만 해도 이들 영업이익은 257억원에 달했으나 2011년 100억원대로 감소하더니 작년엔 67억원 수준까지 줄었다. 일부 운용사는 실적이 적자로 돌아섰다. JP모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43억원 적자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피델리티는 18억원 적자로 3년째 영업손실이 이어졌다.

외국계 운용사들의 실적이 악화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펀드의 수익률 하락과 박스권에 갇힌 증시에 공모펀드시장이 위축된 영향도 있지만 손발을 묶어놓은 영업환경도 크게 좌우했단 지적이 나온다. 외국계 운용사들은 주로 본사에 있는 펀드에 100%투자하는 펀드를 역외재간접펀드로 설정하고 이를 은행, 증권 등 판매사를 통해 개인투자자 등에게 팔고 있다. 그러나 금융지주사내 계열 운용사의 펀드를 판매하는 관행이 심하다보니 외국계가 끼어들 틈이 거의 없다. 정부에선 계열 운용사의 펀드 판매액을 연간 신규 전체 펀드 판매액의 절반 이하로 제한하고 있지만 펀드 판매 상위 10개사의 계열사 판매비중은 작년말 기준 54%에 달한다. 실제 IBK자산운용 펀드의 83.72%(6월말)는 기업은행에서 팔리고 있다.

소규모펀드-투자권유 규제에도 발목

이렇게 펀드 판매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역외재간접펀드는 소규모 펀드에 걸려 외국계 운용사의 신규 펀드 설정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소규모 펀드는 설정된지 1년이 지났는데도 설정액이 50억원 미만인 펀드로 이런 펀드가 운용사 전체 공모추가형 펀드의 5% 이상(소규모 펀드 2개 이하는 무관)일 경우 신규로 펀드를 만들 수 없다. 실제 JP모간 등 외국계 운용사가 소규모 펀드 규제에 걸려 신규 펀드 설정이 제한돼 있다. 역외재간접펀드의 모펀드가 되는 펀드는 설정액이 수천억원이고 본사에서 운용하는데 이를 소규모 펀드에 적용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외국계들의 지적이지만 정부는 운용보수 등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한 영업도 제한돼 있다. 또 다른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는 “투자자인 기관투자가쪽에서 펀드와 관련해 직접 물어봐주지 않는 한 영업할 방법이 없다”며 “이 때도 직접 대답해 줄 수 없고 본사와 연결만 해주도록 돼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투자협회 표준투자권유준칙상 투자권유를 희망하지 않는 투자자에 대해 투자권유를 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외국계 운용사가 증권사처럼 판매사로 등록하지 않는 한 국내에서 영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국내 판매 등록이 안 된 역외펀드의 경우엔 기관투자가가 직접 발로 찾아와 본사와 연결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단 지적이다. 한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는 “공모펀드시장이 클 때는 불리한 영업환경도 극복해나갈 수 있었지만 시장이 죽으면서 최근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홍콩·싱가폴법인서 국내 영업까지?

이런 식으로 펀드 판매 문턱이 높다보니 굳이 한국에 법인을 세울 필요가 없단 지적이 나온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우고 한국을 오가면서 영업하는 것이 더 낫단 얘기다. 2년간 국내에 머문 기간이 183일 미만일 경우엔 ‘비거주자’로 분류되는데 이번 세제개편을 통해 1년간 183일로 비거주자 요건이 완화되면서 이런 영업이 활발해질 유인이 커졌단 지적이다. 비주거자는 국내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만 과세표준에 따라 6~40%를 내면 되고 나머지는 홍콩의 15% 단일세율 등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저율 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

다만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외국계 운용사들은 홍콩이나 싱가포르법인들이 한국에 와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실체를 밝히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있다면 이는 위법소지가 있단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영업형태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에서 영업을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라이센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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