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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겸직금지 위반 자체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로서 의원 자신들의 권한을 과보호한다는 데 있다. 여기서부터 삼권분립 위반, 입법권 침해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주호영 바른정당 당대표 권한대행은 지난 23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김진표 위원장을 비롯해 많은 현역의원들이 위원으로 참여했다”며 “법상 허용되는지, 삼권분립 체제하에서 입법부인 국회의원이 대통령 직속 위원으로 가는게 맞는 것인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주호영 권한대행은 MB정부 시절 정무특보와 특임장관으로 청와대에 근무하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실제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는 김진표 위원장을 비롯해 김태년 부위원장과 김경수, 홍익표, 박광온, 윤후덕, 이개호, 김정우, 유은혜, 한정애, 박범계, 김병기 의원 등 12명이 포함됐다. 이는 민주당 전체 의원(120명)의 10%에 달하는 수치다.
국회법 29조 겸직금지 조항에 따르면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 직 이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 다만 △공익목적의 명예직 △다른 법률에서 의원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직 △정당법에 따른 정당의 직에 한해 겸직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공익 목적의 명예직으로 무보수이기 때문에 겸직금지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국회에 겸직신청서를 제출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50일간 운영될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5년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무보수로 참여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치자.
이같은 근거로 민주당 정부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내각 구성에 있어 민주당 의원들의 이름이 심심찮게 거론된다.
그러나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도 국회의원이 장관 겸직시 ‘직무정지’를 통해 의원활동을 일시적으로 제한한다.
대표적 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서조차 장관 겸직시 법률안 발의를 제한하는 등 의원권한을 제한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아무런 제한이나 규정이 없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야 한다며 개헌을 주장하는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회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한다는 역설에 부딪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대통령의 장관 임명 한 마디에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행정부에 소속돼 주요 국정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입법권 침해라는 지적이 타당하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장관 입각시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 확보가 용이하고, 장관을 발판으로 보다 높은 인지도를 확보해 더 큰 정치적 야욕을 꿈꾸는 경우가 적지 않아 ‘마다할 필요가 없는’ 꽃놀이패가 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유승희 민주당 의원은 19대 뿐아니라 20대 국회에서도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 국가공무원직을 겸한 국회의원의 국회 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 의원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 등 국가공무원직을 겸임하는 의원은 국회 본회의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 또 국회 상임위와 특위, 예산결산특위, 윤리특위 위원 자리를 사임토록 했고, 법안 표결 시 이들을 재적의원 수에도 포함시키지 않도록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막기 위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국회라면, 적어도 자신들의 지나친 욕심부터 내려놓겠다는 자세가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