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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집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23일 오전8시4분 나눔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이날 밝혔다.
빈소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차병원 지하 1층 특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25일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몇 번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마다 구타를 당해 왼쪽 고막이 터져 할머니는 평생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았으며,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동안 7차례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할머니는 지난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체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해방 후 38일을 걸어 조국에 돌아왔다”며 “위안소에서 하루 40여 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고 증언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함경북도 성진으로 가 두만강을 넘었다. 당시 함께 강을 넘던 친구 1명은 강물에 떠내려가 죽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죽을 고비 끝에 고향에 돌아와 위안소로 끌려가기 전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와 생활했지만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때부터 1998년 나눔의 집으로 오기까지 할머니는 혼자 살았다.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것이 소원이었던 할머니는, 배상을 받을 경우 사회에 기부할 계획을 가졌던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