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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아니오 '한국화'로 불러주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20세기 '한국화'의 역사' 전
아카이브 300여점 회화 30점으로
현대사 함께한 한국화 100년 돌아봐
20세기 대표화가 '이응노·박생광'
재조명할 작가 '황창배' 등도 선정
자료·작품·논문 실은 단행본도 발간
서울 종로구 홍지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열고 있는 ‘20세기 ‘한국화’의 역사’ 전에 나온 청강 김영기의 ‘새벽의 전진 6’(1984). 이탈리아 미래파의 움직임·동선을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기는 1970년대 전통 동양화를 ‘한국화’로 부르자고 제안했던 인물이기도 하다(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이응노(1904∼1989)와 박생광(1904~1985), 송수남(1938∼2013). 여기에 황창배(1948∼2001)와 박생광, 김기창(1913∼2001)과 성재휴(1915∼1996).

묵직한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한국화’다. 지난 100년의 한국화 역사를 돌아보며 걸러낸 한국화가다. 이응노·박생광·송수남·이상범·변관식·김기창·천경자·서세옥 등은 20세기 한국화의 대표작가로, 황창배·박생광·김기창·성재휴 등은 20세기 한국화가 재조명해야 할 작가로 꼽혔다.

서울 종로구 홍지동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20세기 ‘한국화’의 역사’ 전을 열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등, 역사상 가장 다이내믹했던 한국사를 가장 강렬한 붓질로 고스란히 담아온 한국화의 한 세기를 되짚는 자리다.

전시는 박물관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대규모 아카이브를 중심으로 한국화가의 주요 작품을 내걸며 한국화의 흔적을 총망라한다. 그간 진행했던 전시팸플릿과 포스터, 단행본과 기사, 사진 등 300여점의 박물관 소장자료를 한편에, 다른 한편에는 금동원·김영기·김호석·박대성·임태규 등 최근까지 활동한 작가의 회화 30여점을 소개하며 한국화의 긴 여정을 한자리에 모았다.

‘고암 이응로 동양화개인전람회 목록’(1949·화신화랑), ‘이당 김은호 선생 회고전’(1970·신세계화랑), ‘동양화 여섯분 전람회’(1971·신문회관) 등의 전시포스터·자료가 먼저 눈길을 끈다. 금동원이 1962년 홍콩국제회화살롱에 입상한 작품 ‘네거티브 우먼스 워킹’, 이탈리아 미래파의 움직임·동선을 포착했다는 김영기의 ‘새벽의 전진 6’(1984) 등은 흔히 접할 수 없는 그림이다.

‘이당 김은호 선생 회고전’ 포스터. 1970년 4월 21일부터 5월 1일까지 서울 신세계백화점 신세계화랑서 열린 전시회다(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앞의 걸출한 인물명단은 전시에 앞서 진행한 설문조사를 통해 만들었다. 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큐레이터·교수 등 24명의 전문가가 선정한 ‘인물로 본 한국화 일대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압도적인 표를 얻어 20세기 대표 한국화가의 맨 위에 이름을 올린 이는 이응노.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돼 끝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타계한 ‘원조 블랙리스트’다. “한국미술을 세계화한 역량과 기법의 독창성”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한국화단에 파문을 던지며 ‘테러리스트’ ‘무법의 자유주의자’ 등으로 불린 황창배는 20세기 한국화가 재조명해야 할 작가 1순위에 올랐다. “예술은 무법”이란 작가 자신의 말처럼 지필묵에 연탄재·잿물 등을 더하는 등 파격으로 한국적 신표현주의를 모색했던 인물이다.

고암 이응노와 내고 박생광.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설문조사를 통해 ‘20세기 한국화 대표작가’로 1·2위로 선정했다(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면서도 재조명해야 할 작가 양쪽 모두에서 선정한 박생광은 “한국화의 정체성과 현대성의 접점을 끌어낸” 작가라는 점이 부각됐다. 한때 왜색이 짙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불교채색화로 시선을 끌면서 소재와 채색, 구성법에서 선도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00년을 주도한 건 화가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전시도 있다. 전문가들은 1986년 호암갤러리서 연 ‘한국화 100년 전’을 주목했다. 세월이 지난 뒤 대가란 타이틀을 단 한국화가의 젊은 화풍을 보여준, 미술사적 의의가 큰 전시다. 기획의도와 구성의 적절성도 호평을 받았다. 1960년 중앙공보관서 연 ‘제1회 묵림회전’이나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서 연 ‘젊은 모색 ’90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도 주요 전시로 이름을 올렸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오는 11월 11일까지 여는 ‘20세기 ‘한국화’의 역사’ 전 전경(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굳이 따옴표를 붙여 ‘한국화’라고 붙인 전시명이 말해주듯 이번 전시는 서양화의 반대급부로 사용해온 ‘동양화’의 흔적을 애써 지우려는 듯 보인다. 두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지만 문제는 위기에서 나온다. ‘한국화의 위기’는 말해도 ‘동양화의 위기’란 말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김달진 관장은 한국 전통회화라 할 한국화에 대한 내용은 물론 명칭조차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대학인 홍익대·서울대에선 여전히 ‘동양화과’로 불릴 정도”라는 것이다.

전시는 11월 11일까지다. 한정된 공간 문제로 미처 내보이지 못한 ‘굴곡 많은 한국화 역사’는 전시와 함께 발간한 동명의 단행본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