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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칼럼] '63억원 김환기 vs 20만원 고흐'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3번 호가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10억 2000, 10억 2000, 10억 2000만원!”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 수화 김환기(1913∼1974)가 1969년 뉴욕시절 그린 19-V-69 #57에 대한 경매가 막 끝난 순간이었다. 동양적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추상화는 이날 10억 2000만원을 부른 한 전화응찰자에게 넘어갔다. 올해 첫 메이저경매의 주역도 김환기였다.

김환기는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최근 몇 년간 그랬다. 지난해 11월 서울옥션의 홍콩경매에서 63억원에 팔려나간 노란색 전면점화는 압권이었다. 푸른계열이 많았던 김환기의 작품 중 노란색이란 희소성이 돋보이긴 했다. 그래도 한국 미술품 경매기록을 다시 깨는 것도 모자라 1∼5위 싹쓸이까지 할 거란 기대는 힘들었다. 그런데 결국 1위 김환기 63억원, 2위 김환기 54억원, 3위 김환기 48억 7000만원, 4위 김환기 47억 2100만원, 5위 김환기 45억 5900만원…, 총 258억원. ‘수화불패’ ‘환기불패’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의 양대산맥인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이 지난해 거래한 총액은 1582억원. 서울옥션이 872억원, 케이옥션이 710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2015년 1749억원(서울옥션 1071억원, 케이옥션 678억원)에 비해선 다소 주춤한 모양새. 하지만 ‘올해 또 한 번’이란 희망을 품게 하기엔 충분했다.

좋은 일이다. 위작 논란으로 축 처진 미술계의 어깨를 다독이는 일도 그렇고, 뭔가 움직이는 듯한 활기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미술시장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나. 아니 ‘미술계를 어찌 구할 건가’ 하는 거창한 관심은 그렇다 치고 ‘도대체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하는 자조 섞인 푸념은 어쩔 건가.

장면을 잠시 바꿔보자. 케이옥션의 첫 경매가 있던 다음날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비아살롱’이란 강연회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D뮤지엄에서 열렸다. 미국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메트로폴리탄·휘트니·브루클린미술관 등이 대중에게 어떻게 문턱을 낮추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이날 강연의 요지. 몇몇 관계자나 들렀으려니 했던 생각은 틀렸다. 200여석을 채운 청중의 관심이 뜨거웠다.

특별히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미술관이 미술품으로 이윤창출을 하는 곳이 아니란 이들의 인식이다. 이들의 미술관은 서비스기관에 불과했다. 예술과 지역민을 친밀하게 연결해주는 플랫폼 말이다. 그러니 첫발은 누구나 제집처럼 드나드는 환경을 마련하는 일이 될 터. 어린시절부터 미술관에 들락거리던 경험이 이후 예술경영에 기여하는 바탕을 만든다는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중이다. 문턱 낮추기는 당장 페이스북·트위터 등의 SNS에 ‘e뮤지엄’으로 다가가는 일도 포함한다. 메트로폴리탄의 경우 37만여점의 소장품을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게도 했다.

‘김환기시대’로 한국미술의 품격은 올라섰다. 하지만 문화라는 게 그렇다. 100만원짜리 1점보다 10만원짜리 10점이 팔리는 게 건강한 구조다. 극단적인 예로 김환기의 원작과 고흐의 레플리카를 비교해 보자. 집 안에 들이는 만족치는 63억원짜리 김환기보다 20만원짜리 고흐의 디지털프린팅이 더 높을 수 있단 얘기다.

한국 미술관이 흔히 범하는 오류가 있다. 그저 블록버스터급만 걸어두면 저절로 장사가 될 거란 계산이다. 그런데 과연 언제까지? 결국 관건은 미술품에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시장의 다른 소비재처럼. 애꿎은 대중의 무관심만 탓하고 있어선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