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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커는 안오고 한국인은 나가고"…파리 날리는 명동

유커로 붐비던 서울 명동, 초성수기임에도 '썰렁'
한은 산출 숙박업 BSI, 2015년 메르스 이후 최저
'사드 충격' 본격화에…"심한 곳은 매출 '반토막'"
인천공항은 '딴 세상'…하루 10만 인파 해외여행
지난 31일 늦은 오후께 여름 휴가철 초성수기임에도 서울 남대문시장을 거니는 인파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사진=김정현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지난 31일 오후 7시께 서울 명동 인근의 A호텔. 여름 휴가철 초성수기임에도 호텔 입구와 로비는 조용했다.

기자는 최근 한 공공기관 인사에게서 “서울 시내의 호텔이 불황”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였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금한령’ 보복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S호텔 프런트 직원에게 “요즘 호텔 객실 상황은 어떠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기자와 인터뷰 금지령’이었다. 이 직원은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많이 줄면서 이에 대해 묻는 기자들이 많이 찾아왔다”면서 “(언론과 인터뷰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했다. 호텔에 빈 객실이 많다는 내용이 보도되면 매출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읽혔다.

같은 시각, 남대문시장은 한산했다. 출출한 시각 관광객들로 붐빌 법한 어묵 포장마차에도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 없었다.

“요새 상인들끼리는 (2년여 전) 메르스 때보다 사람이 더 없다고 합니다. 한때 남대문시장을 가득 메웠던 유커를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요. 일본과 동남아 관광객들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10년째 남대문시장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박모(56)씨의 하소연이다.

의아했던 건 “휴가철이어서 사람이 더 없다”는 박씨의 말이었다. 유커들이 한국을 찾지 않는 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죄다 해외여행을 갔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주말(29~3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한 인파는 역대 최대 수준인 21만여명에 달했다.

◇“유커는 안오고, 한국인 나가고”

사드 보복으로 인한 금한령에 더해 내국인의 해외여행 급증 탓에 정작 우리나라에는 파리만 날리고 있다. 이 때문에 내수 전반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번달 국내 숙박업계의 매출액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68로 전월(75) 대비 7포인트 급락했다.

BSI는 한은이 기업가의 현재 경영상황에 대한 판단과 향후 전망을 설문조사해 작성하는 지표다. 기준치인 100을 넘어설 경우 긍정적인 응답을 한 업체가 더 많다는 의미이며, 100 이하이면 그 반대다.

이 정도 수준은 최근 1년을 돌아보면 ‘매우 낮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지난해 6월 당시 숙박업계의 매출액 BSI는 113으로 기준치를 넘었고, 이는 5개월간 지속됐다. 올해 1월(63) 일시 급락하긴 했지만, 올해 들어서도 줄곧 80~90대를 유지했다. 60포인트대 BSI는 메르스가 창궐했을 당시인 2015년 6월(35)과 7월(29) 이후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이기종 경희대 관광학부 교수는 “(숙박업계 등) 관광업계의 타격이 극심하다”면서 “과거 메르스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얘기도 있다. 대략 30~40% 정도 (매출에) 타격을 받았다고 보고 있으며 심한 경우 반토막 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기자가 찾은 명동의 화장품 로드숍은 사드 충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점주 이모(44)씨는 “손님이 없어 세일을 50%까지 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고 했다.

인근 백화점들도 마찬가지였다. B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에는 손님보다 점원이 더 많았다. Y매장에는 점원이 5명인데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점원 김모(26·여)씨는 “유커들은 한 번에 여럿이 오는 경우가 많아 항상 긴장했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다”고 토로했다.



◇여행수지 만성 적자, 벌써 27년째

우리 관광업계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은 유일무이하다. 중국은 우리나라가 여행수지 흑자를 내는 유일한 나라다. 내국인이 여행 유학 출장 등으로 중국에 가면서 쓴 외화가 중국인이 같은 목적으로 방한하면서 쓴 외화보다 적다는 얘기다. 지난해 대(對)중국 여행수지는 64억2070만달러 흑자였다. 2011년 이후 6년째 흑자 행진이다. 국내 관광업계가 기댈 곳은 중국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외에 △미국(57억2540만달러 적자) △일본(15억6630만달러 적자) △유럽연합(30억5400만달러 적자) △동남아(31억8450만달러 적자) △중남미(1억3540만달러 적자) △중동(4140만달러 적자) 등은 지난해 모두 여행수지 적자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는 얘기다. 최근 인천국제공항에 하루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게 그 방증이다.

오는 10월 초 초장기 연휴 때도 해외여행이 몰리며 내수 반등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걱정도 벌써부터 나온다. 최근 모처럼 살아나는 소비가 정작 해외로 쏠리면 문재인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힘을 잃을 가능성이 커진다.

상황이 이렇자 여행수지 적자가 더 만성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1년 이후 외환위기 때는 1998년과 1999년을 제외하면 20년이 넘는 여행수지 적자국이다.

금융권 고위인사는 “여행수지 적자는 우리 경제의 해묵은 과제”라면서 “국내 관광 인프라가 워낙 부족해 해결책이 마땅치 않은 것도 냉정한 현실”이라고 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가 ‘쉼표 있는 삶’을 여가정책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국내 관광 활성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이기종 교수는 “관광업계도 유커에 의존하지 않아도 매출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