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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게 크는 베니스비엔날레…한국미술은 뒷걸음질

1995년 한국관 건립 후 3회 연속 특별상 수상
2001년부터 수상 없어 12년간 침묵
1인작가 시스템 6년째…선택과 집중 역효과
세계 미술계와 소통실패…문예위 안이한 자세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한국관 전경(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55회를 맞은 세계 최고의 미술축제 베니스비엔날레가 무섭게 진화하고 있는 반면, 그 속의 한국미술은 오히려 해가 갈수록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달 초 개막해 오는 11월 24일까지 6개월간의 대장정에 들어간 베니스비엔날레가 최근 7개 부문 수상자(작)를 발표했으나 한국작가는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술이란 게 ‘올림픽’이 아니기 때문에 ‘메달’ 갯수와는 큰 상관이 없고,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수상의 방향이 달라진다고는 해도 매우 초라한 성적이다.

특히 한국이 베니스비엔날레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199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심각한 위기감울 느끼게 한다. 1995년 한국이 26번째로 국가관을 건립할 때는 전수천 작가가 특별상을 받았다. 이후 1997년과 1999년에도 각각 강익중과 이불이 특별상을 수상해 세계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한국, 2009년 이후 본 전시 참가 못해

하지만 올해에는 수상은커녕 이렇다 할 언급도 없었다. 주요 외신들이 앞다퉈 세계 각국의 국가관과 작가들의 창조적 트렌드에 주목했으나 한국관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오로지 국내 일부 매체만 관행적으로 김승덕 커미셔너와 김수자 작가의 작품에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2001년부터 12년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미술은 침묵했다. 다른 아시아 작가들의 활약과 비교하면 더 허탈했다. 중국과 일본 작가들이 상당수 올해 본 전시에 참여했지만 한국은 2009년 구정아·양혜규 작가 이후 4년째 본 전시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이 같은 한국미술의 ‘베니스비엔날레 역주행’은 2007년부터 베니스비엔날레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의 빈약한 미술외교력과 안이한 준비자세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전시 총감독은 이탈리아 출신의 마시밀리아노 조니였다. 불과 3년 전 광주비엔날레에서 총감독을 했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광주에서 경력을 쌓았다는 건 이번에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광주에서 다뤘던 ‘만인보’를 연상시키는 ‘백과사전식 전당’이란 주제를 내세웠으나 본 전시에 한국작가는 한 명도 안 보였다. 한국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미진하고 세계 미술계와의 교류와 소통에서 여러모로 부족했던 셈이다.

▲미술외교력 의문…1인작가 시스템도 문제

2007년 이후 고착화된 ‘1인작가 시스템’도 고려해 봐야 할 부분이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는 2~3명의 작가가, 2005년에는 무려 11명이 참가했으나 한국관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2007년부터는 1명의 작가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잘 먹히지 않았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은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상징이자 교두보 같은 곳”이라며 “단순히 비좁다는 이유로 1인작가 시스템을 고집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다른 국가관이 시도한 작업을 살펴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안이한 자세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독일·프랑스·앙골라 국가관 등은 이색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작업으로 호평받았다. 독일과 프랑스는 아예 ‘스와핑’을 했다. 양국 우호조약 체결 50주년을 기념해 국가관을 바꿔서 전시한 것이다. 더구나 독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국이 아닌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를 대표작가로 내세웠다. 아이웨이웨이는 쓰촨성에서 수거해 온 어린이용 의자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어 큰 화제를 모았다.

올해 처음 참여한 앙골라는 에드슨 샤가스의 작품으로 전시했다. 샤가스는 영국에서 보도사진을 공부한 작가다. 역시 앙골라의 국적을 초월한 전시관 운영이 빛났다. 이로 인해 앙골라관은 최고 영예인 국가관 황금사자상까지 가져갔다. 1993년 백남준이 독일관 대표로 참여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을 연상시킨다. 또 다른 미술 관계자는 “지난 14년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분명히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커미셔너 선정위원회의 구성을 투명화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귀띔했다.

올해 한국관 대표작가 김수자가 ‘호흡-보따리’를 주제로 한 전시에서 카메라로 사진찍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