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 정책

'장기 침체의 나라' 日 엔화는 왜 초안전자산인가

미국發 금융시장 불안에 엔화만 초강세
3兆 넘는 독보적인 대외순자산이 버팀목
불안할 때마다 일본에 자금 회수…엔화↑
자료=한국은행, 마켓포인트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일본 엔화가 유독 급등하고 있다. 최근 미국 금리 급등에 국제금융시장이 연일 출렁이면서 초안전자산 엔화를 찾는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달러·엔 환율은 이날 장 마감께 달러당 106.57엔에 거래됐다. 지난 2016년 11월 이후 1년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엔화 가치 상승). 낙폭도 가팔랐다. 미국발(發) 금융시장 리스크가 본격화했던 지난 5일(현지시간) 이후 달러·엔 환율은 3% 넘게 내렸다.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주요 통화들 가치는 큰 변동이 없었다. 달러화와 유로화 가치는 각각 0.4%씩 오히려 하락했고, 원화 가치는 1.9% 오르는데 그쳤다. 중국 위안화는 0.1% 절하됐다. 국제금융시장에 불안이 닥치자, 투자자의 눈이 갑자기 엔화로 쏠렸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축통화인 달러화보다 엔화가 더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직도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일본의 통화가 이토록 안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일본은 우리나라보다도 신용등급이 더 낮다.

일본의 독보적인 대외순자산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 3조달러를 훌쩍 넘는 대외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에 갚아야 할 돈보다 받아야 할 돈이 훨씬 많다는 의미다. 일본 경제가 잘 나가던 초호황 시절, 벌어놓은 돈이다. 2위를 다투는 중국과 독일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금융권에서는 “일본은 ‘재벌 3세’이고 우리나라는 ‘전문직’”이라는 비유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이 대외순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자산이 해외에 쌓여 있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보니 엔화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엔화는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도, 일본 경제가 휘청일 때도 강세를 보이곤 한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당시 엔화 초강세가 대표적이다. 일본인들은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영국 파운드화 자산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게 되고, 그러면 도쿄외환시장에는 회수한 자금을 엔화로 환전하려는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엔화를 찾는 수요가 부쩍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불안할 때도 비슷하다. 일본인들은 경기 침체에 대비하고자 세계 각국에서 자금을 회수할 여지가 커진다. 이 역시 엔화 환전 수요를 부른다. 결국 어떠한 리스크 하에서도 엔화는 강세 유인이 더 크다는 게 금융권 인사들의 설명이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국제금융시장에 변동이 있을 때 엔화 강세는 논리에 근거한 경험칙”이라며 “이제는 불안 요소가 생기면 반사적으로 엔화를 사는 단계”라고 했다. 특히나 최근 시장 불안은 미국에서 촉발됐다. 달러화보다 엔화에 더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미국이 올해 기준금리를 네 번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으로 국제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며 “미국 시장이 불안하면 엔화가 초안전자산으로 더 선호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