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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도시바 인수전도 엘피다 전철 밟나

SK하이닉스, 도시바 의결권 사실상 박탈
2012년 日엘피다 인수전과 닮은꼴
도시바가 일본 미에현에 신규 건설 중인 낸드플래시 생산공장 팹6(Fab 6). 도시바 홈페이지
[이데일리 성세희 기자] SK하이닉스(000660)가 일본 도시바(東芝) 우선협상대상자인 한·미·일 연합에 포함됐지만 일본 정부 반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길이 막히게 됐다. 또 도시바와 협력 관계인 미국 웨스턴 디지털(WD)은 미국 법원에 도시바 매각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도시바 인수전을 뒤엎으려고 시도 중이다. 일각에서는 SK하이닉스가 2012년 일본 D램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 인수전 때 포기했던 것처럼 도시바 인수전에서도 손을 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시바 의결권도 못 얻은 SK하이닉스, 기술 협력도 의문

17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의결권 포기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는 지난달 21일 일본 정부 민관펀드와 미국 사모펀드 등이 연합한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하고 협상 조율에 돌입했지만 한 달 가까이 지지부진했다. 미국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과 공동으로 출자한 SK하이닉스가 도시바에 주주 의결권 등을 요구했으나 일본 정부는 반대하면서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 인수전에 힘을 쏟는 이유는 정식 계약을 통한 기술 협력이다. 도시바는 세계 최초로 수직형 반도체인 2D 낸드(NAND)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한 회사다. SK하이닉스도 올 초 72단 3D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낸드와 D램 부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도시바와 협력하면 경쟁업체를 따돌릴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나 인수전 협상이 길어지면서 낸드 기술 협력 여지도 차츰 불투명하게 됐다. 막대한 시설 투자와 기술 개발이 필요한 시점에 정체된 도시바는 시간이 갈수록 값어치가 낮아지고 있어서다. 이미 SK하이닉스는 WD나 도시바와 비슷한 수준으로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설령 SK하이닉스가 미·일 연합과 재협상을 통해 도시바 의결권을 얻더라도 WD가 큰 변수로 남아 있다. WD는 도시바에 독점 교섭권을 요구했으나 2조엔(약 20조원)을 자체 조달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이 깊어지자 WD는 국제중재재판소(ICC)와 미국 법원에 도시바 지분 매각 중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법원은 오는 28일(현지시각) 도시바 매각 중지 소송을 심리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건 2D 낸드이며 현재는 3D 낸드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기술도 급속도로 변하는 중”이라며 “이전에도 대만 D램 회사가 PC에서 모바일 시장으로 급변하는 상황에 투자 시기를 놓쳐 퇴출당했는데 도시바도 비슷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日엘피다 인수전과 닮은 꼴…SK, 포기 가능성도 잔존

도시바 인수전 양상이 2012년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한 직후 참여한 일본 엘피다(ELPIDA·현 마이크론) 인수전과 닮아가고 있다. 엘피다는 당시 D램 반도체 부문 세계 3위(13%)를 자랑하는 기업이었다. 그러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인수 대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일본 도시바, 미국 마이크론(Micron) 등 반도체 업계 강자가 눈독을 들였다. 특히 당시 D램 시장 점유율 23%로 세계 2위였던 SK하이닉스는 엘피다 인수로 1위인 삼성전자(005930)와 점유율 격차를 좁히려고 시도했다. 업계 4위였던 마이크론도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생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시기 낸드 강자였던 도시바는 SK하이닉스에 엘피다 공동 인수를 제안했다가 발을 뺐다. 또 SK하이닉스도 예비 입찰에서 1차 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본 입찰을 포기했다. SK하이닉스는 그해 5월 이사회에서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인수전에서 빠지기로 결의했다.

SK하이닉스가 이번에도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인수전에서 나올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가 우선협상 대상자와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당장 일본 증시에서 상장 폐지될 처지”라며 “도시바 인수전에 참여한 한·미·일 연합 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WD 제소까지 겹쳐 SK하이닉스에 실익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