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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 관객에게 성큼 다가간 조화로운 무대

- 심사위원 리뷰
명창 김정민의 아홉번째 완창판소리 '적벽가'
남성적인 판소리 마당 여성 명창으로 도전
LED 모니터·애니메이션·소도구 이용
쉽지 않은 내용 이해 도우며 관객과 소통
김정민 명창의 ‘명창 김정민의 아홉번째 완창판소리-적벽가’ 공연 장면(사진=우정기획).


[유영대 고려대 한국학 교수] 김정민 명창의 공연 ‘명창 김정민의 아홉번째 완창판소리-적벽가’(이하 ‘적벽가 완창’)가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있었다. 네 시간에 걸쳐 펼쳐진 이날 공연(고수 이태백·김청만)은 여느 완창 판소리와는 대비되는 중요한 특징이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판소리가 관객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김 명창이 직접 고민해 무대를 꾸며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적벽가’는 중국의 ‘삼국지연의’를 속속들이 읽지 않고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판소리 레퍼토리다. 숱하게 등장하는 다채로운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그려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단순히 이름만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수십 명에 이른다. 이 어려운 내용의 ‘적벽가’를 통해 김 명창이 관객에게 다가간 방식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판소리 ‘적벽가’는 장수 간의 의리, 웅혼한 전투장면, 참모들의 지략싸움, 군사들의 서러운 사연 등이 교차해 등장한다. 특히 장수들의 전투장면은 ‘삼국지연의’에 정통한 청중이라면 그 장면을 연행하는 광대의 소리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그래서 ‘적벽가’는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가장 즐기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아 왔고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애호하는 전유물이 됐다.

김 명창의 음색은 현대 극장에 잘 어울리는 맑고 고운 특징이 있다. 판소리 ‘적벽가’는 꿋꿋하고 호방한 방식으로 연행되면서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적벽가’에는 다양한 인물묘사와 전투장면 등이 한자말과 고사성어로 이뤄져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류명창에게 ‘적벽가’ 완창은 하나의 도전이 되는 것이다.

김 명창은 이 까다로운 스토리 전개의 이해를 위해 애니메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관객을 ‘적벽가’의 장대한 서사 안으로 끌어들였다. 소리꾼의 뒤에는 으레 등장하는 병풍 대신 커다란 LED 모니터를 설치했다. 그리고 ‘적벽가’의 진행에 따라 빈틈없이 그 내용을 상징하는 애니메이션이 나타나 지금 김 명창이 노래하는 내용을 겹쳐서 보여줬다. “관우의 청건녹포(靑巾綠袍)”를 노래할 때, 딱 맞춰 푸른 두건과 녹색 옷을 입고 언월도를 휘두르는 관우가 나타난다. 그래서 관객들은 판소리를 들으면서 지금 나오는 대목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김 명창은 소리의 기량이 탁월하면서 판소리를 보조하는 연기인 발림구사 능력도 빼어나서 관객에게 친화력을 준다. 그는 다양한 소도구를 직접 제작해 장면에 맞게 적절히 배치하여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의상을 전통 한복으로 입는 대신 공명과 조조를 표상하는 의상으로 관객과 마주했다. 전반부의 대표적 인물로 지략의 상징인 공명을 그려내기 위하여 학창의를 입었고, 후반부의 대표적 인물인 조조를 그려내기 위하여 붉은 홍포를 걸쳐서 장면화시켰다. 장비의 장팔사모, 조자룡의 활, 공명의 와상, 그리고 천하를 그려놓은 지도 등은 모두 관객들에게 ‘적벽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소품이 됐다.

김 명창의 ‘적벽가’ 공연은 관객을 향한 최대한의 봉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려운 용어를 이해할 수 있게 소품을 제작하여 보여줬고, 애니메이션을 배경으로 삼아 작품 서사 단락의 흐름을 제시했다. 그가 관객의 작품 이해를 위하여 주의를 기울인 것은 그날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반응으로 잘 나타났다. 현대인에게 어려운 텍스트가 관객에 다가가서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하나의 모델이 됐다고 생각한다. ‘적벽가’의 난해한 대목들이 성의를 기울인 애니메이션 장면들로 인해 현대의 젊은 관객과 직접 만나는 익숙한 계기가 됐다.

김정민 명창의 ‘명창 김정민의 아홉번째 완창판소리-적벽가’ 공연 장면(사진=우정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