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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火, 다스리면 에너지

감정이라는 무기
수전 데이비드|384쪽|북하우스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2마일(약 3.2㎞) 앞 전방에 불빛이 보입니다. 충돌할 것 같습니다!” 영국 군함의 한 사병이 고함을 질렀다. 선장은 불빛에 신호를 보내 “우리와 충돌할 경로에 있으니 진로를 20도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불빛이 곧바로 답신을 보내왔다. “그쪽이 진로를 20도 수정할 것을 권고한다.” 선장은 권위를 무시당한 것 같아 모욕감을 느꼈다. “우리는 무려 3만 5000t 전함이다. 너희가 진로를 바꿔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불빛이 잠시 머뭇거리다 답신을 했다. “우리는 등대다.”

1912년 영국 귀족가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국 TV 드라마 ‘다운튼 애비’(2010)의 한 장면이다. 간혹 이처럼 한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분별력을 잃을 때가 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부끄러운 기억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수없이 같은 말을 되뇌던 흑역사가 있을 터.

심리학 전문가이자 세계 굴지기업의 자문에 응해 온 저자는 나를 자극하는 수만 가지 감정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20년간 상담과 지도, 다양한 연구활동을 통해 감정의 여러 원리를 검증하고 다듬은 결과물이다. 그는 “많은 사람이 쉽게 분노를 느끼고 감정의 응어리에 갇혀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며 “부정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마주하면 생산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방법으로 새로 제시한 단어가 ‘감정의 민첩성’이다. 내 안의 감정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스려 감정의 회복력을 높이는 능력을 말한다. 민첩성을 기르기 위해선 4단계를 거쳐야 한단다. 먼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한 걸음 비켜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소한 변화를 통해 성장한 뒤에, 균형을 통해 나아가는 것. 이대로 한다면 급변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자신만의 무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골치 아프고 불편한 감정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 감정을 유발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차라리 이런 감정, 생각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호기심·자기연민·수용의 눈으로 바라보고 큰 그림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란 얘기다. 명쾌한 안내서로 읽히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감정’이다. 스스로를 자주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할 계기는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