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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안철수 바이러스’ 관찰법

이번 대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안철수 현상’이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그리 주목받지 못하더니 국민의당 경선을 치르면서 순식간에 돌풍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당선 고지까지 순풍을 타리라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발뒤꿈치를 꽉 움켜쥔 형세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문 후보를 제치고 앞서나가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국면이 유동적이어서 아직 승부를 점치기는 어렵다고 해도 일단 양강 구도가 형성된 것만은 틀림없다. 보수진영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사이의 단일화 작업이 변수로 남아 있지만 지금 분위기에서 판세를 흔들기엔 한계가 없지 않다. 다른 후보들을 감안한 다자대결에서도 결국 두 사람의 양자대결로 좁혀질 것이라는 게 그동안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의 결론이다.

안 후보가 엄연히 진보·개혁 세력으로 분류되면서도 보수층의 지지표를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이번 선거의 특이한 기류다. 보수성향 후보를 찍는다면 오히려 표가 분산됨으로써 그 반대편에 위치한 문 후보에게 고스란히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는 셈법이 작용한 결과다. 호남 지역의 표심이 문·안 두 사람을 향해 갈라진 것은 물론 전통 보수세력의 안방으로 간주되는 대구·경북에서도 표심이 요동치는 상황이다.

지지율이 상승기류를 타면서 안 후보가 곳곳에서 견제 받고 있는 것은 선거판의 당연한 모습이다. 보수진영으로부터는 ‘얼치기 좌파’로 손가락질 받고 있으며, 문 후보 측으로부터는 그의 지지층을 들어 같은 적폐 대상으로 공격 받는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보수진영이 안 후보의 국민의당과 중도 대연합을 꾀했으며, 더욱이 문 후보와는 한때 같은 정당에 몸담았던 입장이라는 점에서 냉엄한 정치판의 생리를 실감하게 된다.

그런 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안 후보의 선거 접근방식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이다.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목소리가 달라졌고, 눈빛이 달라졌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박원순·문재인 후보에게 각각 출전권을 양보했던 ‘간철수’ 때와는 분명 달라진 면모다. 딸의 재산을 공개함으로써 문 후보 아들의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정면 공격에 나섰으며,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이번 선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아직은 2%가 부족하다. 정체성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게 그것이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를 내세워 양쪽 표심을 훑겠다는 전략이겠으나 거꾸로 양쪽으로부터 배척 받을 소지도 다분하다. 구호로는 손색이 없지만 구체적인 현안에 부딪치면 과연 실행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안 후보 지지층의 결속력이 다소 약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보수층의 지지율이 안 후보 쪽으로 쏠리는 것은 문 후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북핵 문제로 한반도 사태가 위기로 치닫는 상황에서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적폐청산 공약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문 후보도 그런 점을 의식한 나머지 “미국을 먼저 가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마당이다. 문 후보의 변신이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전략적 선택인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안 후보의 절충적인 공약도 똑같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내일, 모레 후보 등록이 끝나고 TV토론이 이어지면서 표심이 또 어떻게 변할지는 내다보기 어렵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막판까지 지켜질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안철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고질적인 지역·이념구도가 깨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정치가 구태에서 탈피하려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이러한 구도를 지켜가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