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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이낙연 총리의 ‘몸부림’ 약속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좌우할 시민배심원단 구성을 놓고 논란이다. 환경·탈핵론자들 위주로 배심원단이 짜여진다면 결과는 뻔하다. 이미 30% 가까운 공정률에 이르면서 1조 6000억원이나 소요된 건설비가 자칫 허공에 날아갈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였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몸부림을 쳐서라도 배심원단의 객관성을 담보할 것”이라고 다짐한 배경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공정·객관성이 확실한지 살펴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는 현재 공사가 중단된 상태에서 회생이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배심원단을 내세워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는 자체가 ‘탈(脫)원전’ 정책을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간주되기도 한다. 지난 정부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추진돼 온 원전건설 계획이 시민들의 공론화 과정에 따라 번복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원자력 전문가들을 포함해 적잖은 공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우려를 표명하는 까닭이다. 산업계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지금껏 ‘값싼 전기’로 보편적 전력 복지를 제공해온 원자력 산업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일단 배심원단의 구성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구성에서부터 편파적이 된다면 국민들이 그 결과에 수긍하지 않을 테고, 따라서 더욱 심각한 사회적 마찰과 분열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배심원단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구성하겠다는 이 총리의 다짐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문제는 탈원전 정책이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이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정통한 백운규 교수가 새 정부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원전폐기 정책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총리로서도 이러한 정책의 본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왈가불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얘기다. 굳이 ‘몸부림’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의지를 강조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법하다.

새 정부의 정책적 신뢰성을 갖추기 위해 이 총리가 노력해야 하는 과제는 신고리 5·6호기뿐이 아니다. 내각과 청와대 진용이 대부분 진보성향 인물로 채워짐으로써 정책 담론이 현실적이기보다 다분히 이상적인 흐름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위치에 있다고는 해도 역할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문제. 4대강 논란, 교육개혁 등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여기저기서 제기된다. 절차적 정당성은 갖췄는지, 속도 조절의 필요성은 없는지, 일반 여론은 어떠한지 두루 살펴야 한다. 반드시 추구할 만한 목표라고 해서 눈앞의 현실을 무시해서도 곤란하다. 이제 새 정부의 내각 진용이 거의 완료된 단계이므로 각 부처별로 우선추진 과제가 제시되겠지만 이 총리도 나름대로의 문제의식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더구나 서울의 중심가 도로가 한낮에 민노총 시위대에 점거당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들은 불편을 겪으면서도 딱히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응급 환자를 후송하는 구급차조차 시위대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런 상황이라면 차벽을 풀고 평화적 시위를 보장한다는 경찰 당국의 약속은 자랑이 아니라 직무 포기로 인식돼야 마땅하다. 이에 대해서도 이 총리가 당연히 책임 의식을 느껴야만 한다. 이 총리가 아직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항간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들이 새 정부가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과 연관돼 있다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전임 박근혜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씨가 자신을 “망한 왕조의 도승지”라며 드러낸 참담한 심경을 선뜻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느 정권이나 성공을 바라지만 그 어느 구석에 실패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총리의 ‘몸부림’을 기대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