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 정책

(이익원 칼럼) 쾌도난마식 경제 정책은 없다.

비정규직 제로시대 열려면
고용·임금체계 유연화 해야
노조 양보 이끌어내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설득 나서야
(이익원 칼럼) 쾌도난마식 경제 정책은 없다.

비정규직 제로시대 열려면

고용·임금체계 유연화 해야

노조 양보 이끌어내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설득 나서야

J노믹스 핵심은 일자리를 늘려 국민소득을 증가시키겠다는 데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첫 업무 지시로 한 것이나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가 1만명에 가까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건 J노믹스의 정책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권교체한 대통령의 취임 일성인 만큼 무게가 실렸다. 기간제로 근무하거나 파견·용역·도급 계약 등 고용불안에 시달려온 수백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인천공항에서 유니폼을 입고 고객을 맞는 항공사 여직원들조차 “우리는 언제 정규직 전환이 되느냐”고 묻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정책이라고 해서 ‘도깨비 방망이’가 될 수 없다. 쾌도난마식 경제정책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정책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좋은 정책은 구성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각자 위치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게 전체 사회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지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설계주의자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노동개혁과 맞물려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해묵은 정책 과제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취임식 후 광화문 광장에서 가진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서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도록 관심을 갖고 힘쓰겠다”고 말했다. 곧바로 정책 우선순위에 포함됐고 대기업 및 금융사 인사담당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실적을 내놓느라 홍역을 치러야 했다.

파견근로보호법과 비정규직 보호법이 만들어진 건 훨씬 먼저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다. 300인 이상 대기업과 공공부문 사업장을 대상으로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된 게 2007년 7월이었다. 비정규직의 차별대우를 금지하고 고용안정을 보장하려는 취지였다. 입법 취지는 좋았지만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한국노동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03∼2008년 비정규직 평균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60% 수준을 유지했지만 이후 임금 차는 더 벌어졌다. 2016년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53% 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간접고용과 무기 계약직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해고 요건과 고용의 경직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비정규직 보호법를 만든 탓이다. 노동 유연성 확보 없이 비정규직을 보호하려는 조치가 나오면 사업주들은 정규직 고용을 꺼리게 된다. 정규직 노조의 양보없이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어려운 이유다.

경직적인 연공급제도 문제다. 후보시절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좌장 역할을 해 온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는 임금체계의 유연성 개선이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도라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의 권력구조와 경제정책> 에서 “연공급 위주의 임금 체계하에서 근속연수가 일정 기간을 초과하면 임금이 생산성을 초과해 중고령자 조기 퇴출 및 비정규직 선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도출해야 비정규직 문제를 풀 수 있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추진 중인 일본도 정부가 앞장서 연공급제를 허물어 중장기적으로 비정규직의 임금을 끌어올리려고 하고 있다. 정규직 과보호를 축소해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해야 경제도 활성화하고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작년 말 아베 정부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도입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조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정부가 보육 ·주거· 교육 분야에서 혁신정인 정책을 통해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줘야 한다. 해고에 따른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단순히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시장임금을 올리고 소득을 나눠주는 방식만으로는 성장은 물론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

국가 리더가 경제 정책을 성공적으로 펴기 위해선 역사적 흐름이나 사회 변화를 꿰뚫어봐야 한다. 통찰력을 갖고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전제조건은 우리가 4차산업 혁명에 올라타기 위해서라도 선결해야 하는 과제다. 4차 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없는 곳과 임금체계가 경직된 곳에서는 절대로 꽃을 피울 수 없다. <총괄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