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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추석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논쟁이 생기면 하루 이틀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죠. 다음 기회에 이야기해봅시다.”(배우 김윤석) “실화의 내용을 더하거나 덜하지 않게 사용했고,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특정 사람들을 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배우 마동석)

3일 나란히 개봉한 영화 ‘남한산성’과 ‘범죄도시’의 주연 배우들이 인터뷰에서 내놓은 말이다. 영화 ‘청년경찰’에서 조선족을 폭력의 축으로 묘사한 것을 놓고 최근 조선족, 나아가 다문화 이민자에 대한 영화계의 논쟁이 뜨겁다. 몇몇 단체는 조선족뿐만 아니라 소수자들이 영화나 방송물로 인해 피해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10만 서명운동과 국가인권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였다. 이들은 한국에 존재하는 소수자들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해나갔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추석 연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은 갈등을 떠올려 본다. 조선족에 대한 불편한 시각만 있는 게 아니다. 동남아 국가 출신 며느리를 맞은 가정에 대한 차별을 넘어 남자와 여자, 부자와 서민, 기업과 노동자 등의 편견이 여럿이다. 어느 것 하나 하루 이틀 토론을 한다고, 특정 사람을 말한 게 아니라고 눙치고 끝날 일이 아니다. 올해 발표한 노래 ‘I Am Me’에서 래퍼 산이의 대사처럼 “여혐 남혐 일베 메갈 여당 야당 너 나” “오 제발 플리즈 모두 시끄럿!”을 되뇔 정도로 복잡한 사안들이다.

인종의 용광로로 불리는 미국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조용한 저항이 미국을 달구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의 무릎 꿇기는 지난해 8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 쿼터백 콜린 캐퍼닉이 처음 시작했다. 캐퍼닉은 당시 흑인에 대한 경찰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미국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은 자세를 취했다.

이 저항은 최근 한 달여 동안 갑작스럽게 달아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앨라배마주 헌츠빌을 방문해 가진 연설에서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는 선수들을 비애국자로 비난하면서 “구단주들에게 이런 개XXX들을 해고하라고 말하자”고 직설적 발언을 내놓은 이후다. 32개 NFL 구단 중 절반가량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또는 선수들의 무릎꿇기에 대한 지지 성명을 내놓더니 미국프로농구(NBA)와 북미 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에 이어 예술계와 학교, 의회에 이르기까지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도 미국의 무릎 꿇기 운동에 대한 해결 논리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는 “국가를 무시하면 무조건 나쁘다”라는 트럼프의 ‘흑백 논리’가 이번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법은 사회적 이슈의 근본적인 이유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고, 사회 각 구성원이 오랜 고민과 토론 끝에 합리적 해결방안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자유경쟁이 극대화된 우리 사회가 평등을 꿈꾸지만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 문제의 원인을 인종차별, 나아가 성차별, 소득 차별, 이념차별 등에서 찾아서는 안된다. 우리의 말 한마디뿐 아니라 영화 속 대사 한마디로도 우리 곁에서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이들이 있을 터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이 있다. 추수 끝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몸이 풍족해지는 만큼 마음도 여유를 갖고 차별이나 편견은 없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게 그 상처와 눈물을 닦아주는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