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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별세…'베지밀'개발 두유 선구자 꼽혀

향년 100세
일제 강점기 당시 최연소 의사고시 합격생
소아과 의사 거쳐 1966년 베지밀 개발
고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사진=정식품)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국내 최초로 두유를 개발한 정식품의 정재원 명예회장이 9일 밤 별세했다. 향년 100세.

1917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고인은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보통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한 고인은 목욕탕 심부름꾼과 모자가게 점원 등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중 우연히 의학강습소의 급사로 일을 하게 된다. 등사기로 강습소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재를 만들다가 의사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당시에는 의대를 다니지 않고 시험만으로도 의사 면허증을 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2년여간의 주경야독 끝에 만 19세에 의사고시를 통과, 일제 강점기 당시 최연소 의사고시 합격생으로 이름을 알렸다.

고인이 두유를 개발하게 된 계기는 의사로서 사명감이 바탕이 되었다. 1937년 명동의 성모병원 소아과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한 이후 원인 모를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죽어가는 신생아를 보고 의사로서의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1960년 처와 자식을 고국에 남겨두고 신생아의 영양실조와 합병증 사망 원인을 찾기 위해 44세의 나이에 유학을 떠난다.

영국 런던 대학원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UC 메디컬 센터 등을 거쳐 만 5년 간의 유학 생활 끝에 국내 신생아들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사망 원인이 모유나 우유에 함유된 유당 성분을 정상적으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유당불내증’임을 알아냈다. ‘유당불내증’을 가진 신생아는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해 결국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귀국한 고인은 서울 명동에서 ‘정소아과’을 운영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마침내 고인은 1966년 유당이 없고 3대 영양소가 풍부한 콩을 이용해 만든 선천성 유당불내증 치료식 두유를 개발해 식물성 밀크(Vegetable + Milk)라는 뜻의 ‘베지밀’ (Vegemil)이라고 명명했다. ‘베지밀’은 1966년 제 1회 발명의 날 대법원장상을 수상했고 두유의 대명사가 됐다.

1973년 정식품을 창업하고 1984년 당시 두유 제조 시설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갖춘 청주공장을 준공해 본격적으로 베지밀을 양산했다. 1985년에는 중앙연구소를 설립해 제품 개발과 품질 개선에 힘썼다. 콩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고인은 국제적으로도 그 공로를 인정 받아 1999년 국제대두학회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또한 1984년 ‘혜춘장학회’를 설립해 지난 33년 간 약 2350명에게 21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기업의 사회환원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지난 2010년 아들인 정성수 정식품 회장에 경영권을 주고 현업에서 물러났지만 이후에도 콩에 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국제대두학회에 참석해 직접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2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