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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에게 묻는다1]양준혁 '타자에게 변화구란'

[이데일리 정철우기자] 1863년 미국 메사츠세츠주에 살던 캔디 커밍스라는 소년이 조개 껍질을 던지다 우연히 '커브'를 발견한 뒤 모든 세상의 투수들은 변화구를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이젠 그 범위가 세분화 돼 그 수(마쓰자카가 던진다는 자이로볼 등까지 더하면)가 두자릿수에 이를 정도로 많은 구종들이 탄생했고 또 발전했다. 목표는 단 하나였다. 어떻게든 타자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

그렇다면 타자에게 있어 변화구란 어떤 의미일까.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2,000안타(8일 현재 1,969안타) 달성을 눈 앞에 둔 '위풍당당' 양준혁(38.삼성)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있어 변화구란 무엇입니까."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양준혁은 1993년 프로무대를 처음 밟았다. 전설의 강호 '해태'가 한참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이며 '국보급 투수' 선동렬이 0점대 방어율로 펄펄 날 때다.

91년 1회 한.일 슈퍼게임에서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에 한국 대표 타자들이 가을 낙엽처럼 무릎을 꿇고난 이후 변화구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싹트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한국 야구에서 변화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커브와 슬라이더,그리고 슈퍼게임에서 배운 포크볼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양준혁은 "그땐 변화구가 많지 않았다. 그때는 포크볼도 귀했다. 조계현(당시 해태.현 삼성 투수코치)선배 빼고는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도 많지 않았다. 타자 입장에선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었던 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변화의 물결

본격적으로 변화구가 다양화의 길을 걸은 것은 98년 무렵으로 기억했다. 이 땅에 외국인 선수들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던 때와 시기를 같이 한다. 우리에게 생소했던 컷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등이 무더기로 소개됐다.

투수들의 노력도 눈물겨웠다. 힘 좋은 외국인선수들과 그에 영향을 받은 토종 거포들을 이겨내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갈고 닦았다.

"용병들이 들어오면서 야구의 흐름이 크게 달라졌다. 타자도 우즈라던지 이런 선수들이 오면서 홈런 40개를 쳐야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컷 패스트볼도 그때 처음 들어왔다. 짧게 잡고 딱딱 떨어지는데 정말 치기 어려웠다. 체인지업도 그때로 기억한다. 그 전에는 포크볼이 많지 않았는데 그때부터는 많은 선수들이 포크볼을 익혀 타자를 괴롭혔다."

▲변화구 구분법

투수의 공을 최대한 단순화 해서 대응하려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비결이라고 했다. 크게 직구(빠른 공),슬라이더(옆으로 휘는 공),포크볼(밑으로 떨어지는 공) 이렇게 3가지의 변화구만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변화구가 9개에서 10개 정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크게 3가지만 생각한다. 직구 슬라이더 포크 이렇게 3가지로 나눠 들어간다. 체인지업 정도는 포크 범주에 넣는 형식이다."

그럼 투수들은 왜 그리 많은 공을 던지려 하는걸까. 다 비슷하게 느껴진다면 말이다. 양준혁은 "내가 좀 독특한 스타일이어서 그런 느낌을 갖는 것 같다"고 답했다.

▲변화구를 잘 치려면

양준혁은 변화구를 미리 머릿속에 넣지 않는다고 했다. 직구 타이밍에 스윙을 시작해 공의 궤적에 따라 대응하는 스타일이라는 뜻이다. 양준혁은 "노려치기에 능한 선수들이 있다. 그런 선수들에겐 다양한 변화구가 효과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난 그 부분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한다. 난 변화구로 친 홈런이 더 많은데 투수들은 내가 노려친 거라 생각할때가 많다. 그래서 더 헷갈려 한다."

변화구를 잘 치기 위해 타자가 준비해야하는 것은 무엇일까. 양준혁은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말이 다 맞다고는 할 수는 없다. 야구는 답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몸에 맞는 것이 정답"이라고 전제한 뒤 "직구를 잘 칠 수 있어야 한다. 난 제일 치기 어려운 것이 직구라고 생각한다. 빠른 공을 맞힐 수 있다면,그걸 배트의 중심에 맞힐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밸런스가 그만큼 잡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항상 직구를 노리는 것이다. 변화구 치겠다고 그것만 연습하면 이도 저도 다 놓칠 수 있다."

▲직구가 마구다

양준혁의 발언은 야구계에서 종종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강타자들 중에는 "세상에서 가장 치기 어려운 공은 직구"라고 말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양준혁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기준으로)직구가 145km가 넘을 정도면 치기 정말 어렵다. 0.1초 사이에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느낌이 다르다. 빠른 공이 제대로 제구돼 들어오면 정말 치기 어렵다. 변화구는 변화가 이뤄진 다음에 대응할 틈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럴 땐 툭 쳐서 안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빠른공이 제대로 들어오면 언제나 밀린다."

그러면서 그는 '두려움'에 대해 슬쩍 얘기를 꺼냈다. 타자들이 가장 말하기 꺼려하는 부분이다. 투수에게 겁 먹어 공을 치기 힘들다는 말은 타자들에게 불문율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야구기자인 고(故)레너드 코페트는 그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타격은 두려움과 싸움이다. 타자들은 두려움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그건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교육 받아왔기 때문이지 무섭지 않아서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양준혁은 "솔직히 말해 빠른공이 살아 올라오는 느낌을 받으면 겁이날 때가 있다. 타격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직구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타자를 움찔하게 만드는 두려움,거기에 코너워크까지 잘 되면 절대 치기 힘들다. 실투가 되는 건 몰라도"라고 덧붙였다.

▲구종별 강자

그렇다면 양준혁이 생각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구종별 최강자는 누구일까. 양준혁은 생각지도 않게 이 부분에서 많은 뜸을 들였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슬라이더 : 선동렬 현 삼성 감독. 슬라이더가 낮게 들어오다가 마지막 순간에 변했다. 제일 치기 어려운 코스로 오다가 마지막에 구석으로 빠져나갔다.

*포크 볼 : 정명원 현대 코치. 내 기준에서는 아직까지 그 이상의 포크 볼은 본 적이 없다. 기본 스피드가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에 떨어지니 정말 어려웠다. 직구 타이밍에서 나오는 타자들이 원래 잡아내기 힘든 공이 포크볼이다. 난 헛스윙을 잘 안하는데 정명원 선배 볼에는 자주 당했다. 김용수(현 LG 코치) 조계현(현 삼성 코치)선배도 잘 던졌다.

*체인지업 : 갈베스(2001년 삼성)가 제일 좋았다. 저 공은 정말 못 치겠다 싶었다. 분명 직구와 똑같은 궤적과 회전으로 들어오는데 마지막 순간에 변한다. 딱 한번 쳐본 것 같다. 류현진이 좋다고들 하는데 아직은 내가 대표로 꼽을 정도는 아니다. 송진우 선배도 좋다. 코너워크를 할 수 있으니까 최고다.

*컷 패스트볼 : 용병들이 다 잘 던졌다. 현대 피어리(2003년) LG 해리거(2001~2002)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직구와 큰 차이가 없었을 정도다.

*커브 : 글쎄.. 특별히 생각나는 선수가 없다. 왼손 거포를 상대로는 커브가 원래 많지 않다. 커브가 요즘 많이 늘기는 했는데 인상적인 선수는 별로 기억이 없다. 김기태 선배나 이승엽 같은 선수에게 크게 떨어지는 커브는 장타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김원형 최원호 김진우 등 커브 명인들의 이름을 꺼내도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직구 : 오승환(삼성) 나는 연습경기때나 몇번 상대해봤을 뿐이지만 보기에도 힘이 있다. 상대해본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공이 세번 살아온다고 한다. 그럼 아무리 잘 쳐봐야 파울이다. 그러니 삼진을 많이 당할 수 밖에 없다.

*투심 패스트볼 : (투심은 변화구는 아니지만)아직은 한화 문동환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공을 상대해봤을때 '아.. 이게 투심이구나'하고 느끼게 한 투수는 문동환 뿐이었다.

-여기서 잠깐. 양준혁이 언급한 구종별 강자들의 이름을 보며 느낀 점이 있는가.

양준혁은 대부분 현재 현역에서 은퇴했거나 한국에서 뛰지 않는 선수들의 이름만을 줄줄이 언급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일 것이다. 우선 추억의 힘. 지나간 세월이 아름다워보이는 감상적인 이유로 그런 답을 내놓았을 수 있다.

두번째는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양준혁은 40세를 훌쩍 넘긴 나이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선수다. 그런 그에게 상대하기 껄끄러운 투수나 구종 목록은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 일기장'일 터. 많은 생각 끝에 보물 숨기듯 가슴 속에 묻어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그런 세심함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