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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무기명 투표, 익명성에 가려진 정치적 책임

인사 관련 무기명투표..소신투표 보장
김이수·김명수 인준안 처리..당론 정하며 입법취지 무색
국민의 알권리·민의를 대변..기명투표 필요성 부각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대통령으로부터 환부된 법률안과 기타 인사에 관한 안건은 무기명투표로 표결한다. 다만 겸직으로 인한 의원사직과 위원장사임에 대해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협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국회법 112조 中)

이에 따라 김이수 전 헌재소장 후보자에 이어 이번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무기명으로 투표가 이뤄졌다. 하지만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이 부결되자 논란이 불거졌다. 사전에 당론을 확정한 다른 정당과 달리 자율투표를 내세운 국민의당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표 결과를 두고 진실공방이 펼쳐지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간의 감정싸움으로 치닫기도 했다.

인사문제와 관련해서 특별하게 무기명투표를 허용한 배경에는 국회의원 개개인의 소신과 양심에 따른 투표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기명투표로 이뤄질 경우 자칫 해당 인사의 인격이나 자질 보다는 사사로운 인연이나 앞으로의 관계에 연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사 관련 무기명투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국회 처리를 앞두고도 무기명투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탄핵안 가결정족수인 200명을 채우기 위해 기명투표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을 압박해야한다는 주장과 기명투표로 할 경우 지역표심을 의식한 영남권 의원들의 이탈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결국 소신투표를 하는데에 기명투표가 적절한 지, 혹은 무기명투표가 더 부합한지는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현재 이뤄지는 인사투표를 보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의원들이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투표에 참여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각 정당은 정략적으로 당론을 확정하고 투표장으로 들어선다. 이번 투표 결과도 보면 국민의당을 제외하면 여야 구도가 뚜렷해보인다. 무기명투표이지만 사실상 기명투표와 다를바 없다. 본래 입법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명투표를 요구하는 여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에 걸맞게 기명투표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국민이 감시자 역할을 하면서 국회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은 이미 기명투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도 기명투표로 진행한다. 국가와 국민이 먼저라는 생각이 확고하다면 개인적 친분과 관계없이 소신있는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도 이제 기명투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다. 무기명투표라는 익명성에 숨어서 개인적 소신은 물론, 정치적 책임마저 져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1이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가결 된 뒤,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