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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탄핵으로 지명권 잃은 한국당 '사법부 이념화' '생떼'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사법부의 이념화, 정치화, 코드화를 초래할 수 있는 명백한 부적격 후보자.”

자유한국당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반대 이유로 내세우는 명분이다. 앞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자진 사퇴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반대 이유기도 하다.

한국당의 이같은 반대 탓에 17일까지 5일째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하고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인사청문특별위원 역시 보고서 채택을 주장하고 있지만, 나 홀로 어깃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부 인사가 진보성향으로 지명되는 원초적 책임은 한국당에 있다. 탄핵으로 정권을 잃지만 않았어도 김명수 후보자와 김이수·이유정 전 후보자에 대한 지명권은 한국당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되는 12명의 대법관 중 5명 역시 박근혜 정부에서 교체됐어야 할 이들이다.

한국당은 본인들 실정으로 탄핵과 정권교체를 겪으면서 스스로 사법부 최고위층의 인사권을 진보진영에 헌납한 셈이다. 그런 한국당이 사법부 이념화와 정치화를 운운하면서 사법부 공백을 가져오는 행태는 말 그대로 ‘생떼’에 불과하다.

진보정권에서 진보성향 인사를 지명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양승태 현(現) 대법원장 체제하의 대법원이 보수적이라고 평가받게 된 원인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대법관 대부분이 보수적인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됐기 때문이다.

또한 김명수 후보자는 판결과 법원 내에서의 활동을 이유로 ‘진보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유정 전 후보자처럼 특정 정당과 밀접한 인연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의 이념성향이 대법원장 후보자를 낙마시켜 사법 공백을 가져올 정도의 결격사유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근거다.

오는 24일 퇴임하는 양승태 대법원장 임기가 채 1주일도 남지 않았다. 이 기간에 김명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사상 초유로 입법부의 인준 지연으로 사법부 수장의 공백을 가져오게 된다. 한국당은 실정으로 놓친 지명권에 대한 분풀이 전에 뼈아픈 자기반성부터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보수주의자라 믿고 지명한 얼 워런 대법원장이 진보적 판결을 줄줄이 내놓은 것처럼, 김명수 후보자 역시 법과 원칙에 따른 보수적 판결로 문재인 대통령을 후회하게 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