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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은 ‘왜’ 지금 용퇴를 결심했나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사상 최대 실적 발표날
"엄중한 상황…혁신 계기 되길" 조직 변화 의도 해석도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권오현 삼성전자(005930)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 대표(부회장)가 13일 전격 사퇴를 선언하면서 그 시점과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지고 이재용 부회장마저 구속 수감된 이후 ‘총수 대행’을 맡아왔던 터라 예기치 못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충격도 컸다. 공교롭게도 권 부회장이 이끄는 반도체사업에 힘입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날이었다.

지난 7월1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일자리 15대 기업 초청 정책간담회’에서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세번째)이 업계를 대표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박수 받을 때 떠나겠다’ 사상 최대 기록한 날 사표 낸 권오현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총괄하는 DS부문 사업 책임자에서 물러나고 삼성전자 이사회 이사와 의장직도 내년 3월까지만 수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권 부회장은 겸직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직에서도 사임할 예정이다.

권 부회장은 이날 오전 임직원에게 보낸 글에서 “갑작스럽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오랜시간 고민해왔던 것”이라며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삼성전자가 역대 최대 실적을 연신 갈아치우는 시점을 용퇴 적기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삼성전자가 발표한 3분기 잠정 실적은 매출액 62조원, 영업이익 14조5000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 3분기보다 각각 29.7%, 178.9% 급증한 수준으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이다.

특히 반도체부문은 지난 2분기 이미 업계 1위인 인텔을 24년 만에 꺾을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3분기 역시 반도체사업 매출액만 20조원(증권가 추정)으로 인텔(S&P캐피탈IQ 조사 컨센서스 17조8000억원)을 앞질러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분기마다 실적이 신기록을 써내려가며 올해 연간 실적 또한 기대가 크다.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증권가는 삼성전자가 올해 매출액 240조7791억원, 영업이익 54조224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같은 전망치는 석 달 전보다 3.3%(영업이익 기준) 늘어난 것으로 실적 기대치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자료=삼성전자, S&P캐피탈IQ
◇“엄중한 시기” 삼성전자, 변화 예고

권 부회장이 용퇴를 결정한 또 다른 이유로는 경영 쇄신이 꼽힌다. 그룹의 맏형 격인 삼성전자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로서 그룹 전반에 조직 변화를 주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그가 “최고의 실적을 내곤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며 엄중한 상황임을 경고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급격하게 변하는 IT 산업의 속성을 생각해볼 때, 지금이 바로 후배 경영진이 나서 비상한 각오로 경영을 쇄신해 새 출발할 때”라며 “저의 사퇴가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한 차원 더 높은 도전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도 했다.

실제 삼성의 인사는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쓰러진 이후 정체돼 있다. 사장단 인사는 2014~2015년 소폭 이뤄졌고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로 한 해를 건너뛰었다. 인사라는 당근이 없으니 조직의 활력이나 의욕도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권 부회장은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은 이후 5년째 지켜왔던 자리를 물려주고 조직 혁신을 이끌어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권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한 이사진에게 사퇴 결심을 전하고 후임자를 추천한 다음 자리에서 물러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