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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의 눈] 다시 보는 ‘필립스 곡선’ 논쟁

실업률 하락으로 곧 물가 오를 것..옐런의 선제적 금리인상論
구조적인 생산성 하락 우려..‘노동인력 늘어도 물가 안 오른다’ 반박
(자료=open university)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대체 왜 기준금리를 올리는 겁니까?” 닐 카시카라 미국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이렇게 물었다. 카시카라 총재는 지난 14일 열린 미국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에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인물이다.

모든 중앙은행은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 파이터’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가장 싫어한다. 물가가 올라갈 기미를 보이면 기준금리를 올려 과도한 물가 상승을 막는다.

그런데 요즘 미국은 물가 상승률이 미미하다. 가격 변동이 큰 음식료와 기름값 등 에너지부문을 제외한 4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한해 전과 비교해 1.5% 상승하는데 그쳤다. 석달째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치인 2%를 계속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느냐고 카시카라 총재는 항변한다.

하지만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지금은 물가 상승이 낮아 보이지만, 앞으로 물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리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옐런 의장은 필립스 곡선의 신봉자다.

영국의 경제학자인 윌리엄 필립스가 1958년 발표한 필립스 곡선 이론은 실업률과 물가가 역(逆)의 상관관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경기가 좋으면 고용이 늘어나고 실업률이 떨어진다. 사람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기업은 임금을 올리고 이를 제품의 가격에 반영한다. 임금 상승으로 소비 여력이 늘어나고 물건값도 뛰면서 결국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옐런 의장은 지금 당장 물가 상승률이 미미해 보여도 시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미국의 실업률을 고려하면 물가는 곧 올라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뛸 수 있고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게 옐런 의장의 논리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필립스 곡선이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생산성 추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00년부터 금융위기 전까지 농업 부분을 제외한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매년 평균 2.6%씩 증가했다. 그런데 2008년 이후부터는 평균 1.2%로 급격하게 낮아졌다. 1970년대 수준으로 돌아갔다.

생산성은 낮아졌다는 건 낡은 엔진의 차를 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낡은 엔진 때문에 휘발유를 가득 채워도 별로 멀리 가지 못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같은 노동력을 투입해도 생산물이 별로 많지 않다. 많은 노동인구가 열심히 공장에서 일했지만, 성장은 예전만 못하다. 당연히 물가 상승도 기대만큼 올라가지 않는다.

미국은 실업률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로 고용시장이 좋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일자리보다 단순 저임금 일자리가 유독 많아졌다는 뜻도 된다. 옐런 의장 역시 생산성 하락을 두고 “미국 경제의 대표적인 불확실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원래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