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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스타트업 천국`엔 관(官)이 없다

뉴욕 맨해튼 18번가 115W에 위치한 위워크 본사 입구. 이 건물 5층은 위워크가 본사로 사용하고 있고 직원 800여명이 일한다. 나머지 층은 사무실을 빌려 쓰는 입주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사진촬영= 이정훈 기자)


[이데일리 이정훈 증권시장부장] 차를 타고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다 주소가 적힌 18번 스트리트(18th Street)에서 내렸지만 주변은 간판 하나 없는 휑한 주거용 오피스들뿐이다. 그 사이로 드러난 자그마한 안내간판을 따라 들어간 건물 5층에는 요새 한창 핫(hot)하다는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WeWork) 본사가 자리잡고 있다. 사무실 내부는 자유분방했지만 활기찬 모습이었다. 한층을 내려가자 입주해있는 기업체 임직원들과 프리랜서 등이 모여 노는듯 흥겹게 일하고 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州)의 실리콘밸리에 빗대 뉴욕 맨해튼에 있는 벤처 및 스타트업 기업 집적단지를 실리콘앨리라 부른다. 이 위워크뿐만 아니라 스포티파이나 몽고DB, 베터먼트 등 글로벌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스타트업들이 실리콘앨리를 형성하고 있다. 자신을 앨리슨이라고 소개한 위워크 매니저는 `회사가 연방정부나 뉴욕시(市)로부터 받고 있는 혜택이 있느냐`고 묻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부 지원은 전혀 없고 뉴욕시에서 일부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정도”라며 “지원이 크게 없다보니 오히려 우리같은 사무실 공유서비스가 잘 되는 것 아니겠냐”고 답했다. 그나마 “시당국에서 스타트업들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기자의 질문 자체가 한국적 프레임에 갇혔던 것 같다는 느낌에 괜히 머쓱해졌다.

위워크 건물에 입주해 있는 기업들의 업무공간 전경. (사진촬영=이정훈 기자)


위워크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2010년 설립 이후 벌써 전세계 36개 도시에 120곳이 넘는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벌써 지점 3곳을 열었다. 관(官)으로부터의 지원이 없지만 대규모 자금을 여러 차례 조달(펀딩)할 수 있었던 게 고속성장의 배경이었다. 작년에 골드만삭스와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JP모건체이스 등 굴지의 금융회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올 3월에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30억달러(원화 3조4000억원)라는 거액을 수혈받아 현재 몸값만 200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창업주와 초기 직원들은 회사 성장의 과실을 일부 나눴고 투자를 더 늘릴 수 있는 실탄까지 넉넉히 확보했다.

바로 오늘(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도 우리 산업정책과 관련해 이런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가내 이익을 대부분 가져가면서도 실제 고용 창출에는 제 역할을 못하는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창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 글로벌 트렌드에 제대로 들어 맞는 비전이라 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고 스타트업과 중소 컨텐츠산업에 정책금융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창업지원펀드와 모태펀드 등 지원자금도 늘리고 벤처캐피탈 투자 회수를 돕는 플랫폼(거래시장)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리콘앨리에서 보듯이, 또 박근혜 행정부의 `창조경제`에서 보듯이 정부가 주도하는 형태의 스타트업 활성화는 기업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낳고 정권이 바뀌면 곧바로 무너지고 만다. 사회복지분야와는 달리 자생력과 역동성을 필요로 하는 산업정책에서 큰 정부는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스타트업들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만 하면 된다. 이후엔 그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윤활유가 되는 시장기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미국 스타트업 게놈프로젝트는 `2017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 보고서`에서 서울에 대해 “급성장하곤 있지만 자금 조달이나 투자 회수에 강점이 없다”고 꼬집은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