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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위원장 출신 행장을 KB국민 노조가 반대하는 이유

굵직한 합병때마다 반대해온 강성 노조와는 다른 행보
"M&A는 경영진이 판단해야 할 몫"
그레이존 여신 확대에도 적극 반대 목소리…소신의 아이콘
허인 KB국민은행장 내정자가 12일 서울 여의도 은행 본점으로 출근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내부 출신이 됐으니 노조가 출근 저지 투쟁을 하지는 않겠네요”

3년 만에 분리되는 KB금융그룹의 은행장직에 허인 부행장이 내정되자 금융권에선 이같은 반응을 보였다. 과거 KB금융그룹이 유난히 외풍에 시달리면서 낙하산 인사가 올 때마다 노조가 극렬하게 반대했던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 부행장이 과거 노조위원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노조의 반발은 크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KB국민은행 노조는 내정 당일인 11일 오후 즉각적인 반대 성명서를 내고 은행장 내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허 내정자가 노조위원장 시절 일반적인 노조위원장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점, 여기에 그동안 윤종규 회장 연임에 반대 행보를 보인데 대한 연장선상이라는 얘기다.

허 내정자는 지난 1998년 국민은행에 흡수 합병된 장기신용은행(장은) 출신으로 합병 논의가 한창이었던 시기에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당시 기업금융에 강했던 장은은 연봉 수준이나 처우 부문에서 업계 최고였다. 따라서 서민금융에 주력하던 국민은행과의 합병에 대해 행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허 내정자는 합병은 경영자가 판단할 몫이고 노조는 합병 이후 고용안정이나 근로조건을 요구해야 한다며 합병반대를 외치는 노조원들과 대립했다. 경영판단인 합병여부에 대해 찬반 의사를 내비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던 허 내정자는 결국 노조위원장에서 사퇴했다.

대체로 강성인 은행권 노조는 굵직한 인수합병(M&A) 때마다 통합 반대 투쟁을 벌이며 총파업에 나섰다. 신한은행에 합병된 조흥은행, 하나은행 품에 안긴 외환은행,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때에도 흡수되는 쪽 노조의 반대는 극렬했다.

하지만 허 내정자는 M&A는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가계금융 강점을 갖고 있던 국민은행과 기업금융에서 앞서 있던 장은이 합병하면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장은-국민’의 합병은 탁월한 선택이었다는게 금융권의 평가다.

허 내정자의 소신이 돋보였던 일화는 또 있다. 금융위기 전 KB국민은행이 신한은행의 추격에 불안을 느끼면서 전사적으로 그레이존(중간등급 이하) 여신 확대에 나서려 하자 당시 대기업여신 담당 부장이었던 허 내정자는 제살깎아먹기라며 적극 반대했다. 결국 지점장으로 좌천돼 기업금융에서 손을 뗐다. 하지만 그레이존 여신은 금융위기 이후 KB국민은행의 아킬레스건으로 부상했다. 경제가 위축되고 부실이 잇따르면서 매년 1조원 이상의 충당금을 쌓게 만든 원인이 됐다.

이같은 능력이나 소신과는 별개로 허 내정자가 영업그룹 담당 부행장이었던 만큼 실적을 위해 직원들을 독려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불만을 낳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지난 2014년 취임 후 ‘KB 사태’로 느슨해진 조직문화를 다잡고 실적을 끌어올리는데 있어 허 부행장도 전면에서 총대를 멘 셈이다. 노조가 은행 직원들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룹 대표 15명 중 허 내정자가 13등에 머물렀던 점도 이런 배경인 듯하다.

노조는 차기 회장 선임과정에서 실력행사에 나서며 윤종규 회장의 연임에 반대했다. 당연히 윤 회장이 상시지배구조위원회에 참여해 결정한 행장 인선에 대해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노조위원장 사퇴와 그레이존 여신 반대 일화로 허 내정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소신 있는 인사라는 점을 알 수 있다”며 “노조는 반대하고 있지만 여러 핵심 분야를 모두 경험한 만큼 리딩뱅크 수성이라는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적절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