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논쟁]"정보는 잊혀져야 하나?"

美 캘리포니아주, '온라인 지우개법' 시행
잊혀질 권리는 대중의 '알권리'를 침해할 수도
국내는 '임시조치'로 명예훼손된 글 블라인드 처리 가능
  • 등록 2014-07-29 오전 12:35:37

    수정 2014-07-29 오후 3:49:12

[이데일리 이유미 기자] 최근 포털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개인의 과거 기록을 삭제해주는 대행업체가 등장했다. 이들 업체는 자신의 인터넷 과거 기록을 지우고자 하는 의뢰인을 대신해 인터넷에 노출된 해당 정보들을 수집한 뒤 포털이나 SNS 각 사이트마다 해당 정보를 삭제요청하는 메일을 보낸다. 삭제요청을 접수한 인터넷 사업자가 삭제하거나 접근 차단을 해주면 의뢰인의 과거 기록은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인터넷 기록 삭제 업체가 등장할 만큼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 발달로 한번 기록된 정보는 다른 사람에 의해 수십 곳의 사이트로 전파되거나 아무리 오래된 기록이더라도 검색 몇 번으로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잊혀질 권리’가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공적인 이익에 영향이 없으면서 동시에 사생활을 침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잊혀질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공적인 이익을 어디까지, 사생활 침해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또 잊혀질 권리가 지나치가 넓은 범위로 해석이 되면 인터넷 사용자의 알권리와 게시자의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잊혀질 권리를 원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내년부터 일명 ‘온라인 지우개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캘리포니아 청소년들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인터넷에 올린 글이나 사진에 대해 향후 해당 인터넷 업체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청소년기에 무심코 올렸던 자신의 생각이나 정보들이 향후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령 학창시절 올렸던 A회사에 대한 욕설이 향후 A회사에 입사할 때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한순간 작은 실수를 하더라도 이를 저장하거나 기록하는 곳이 없었으며, 기록이 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다. 이젠 이용자가 10년 전 올린 SNS 글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검색을 통해 알 수 있다. 과거의 모든 행적이 끊임없이 이용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잊혀질 권리가 필요하다고 외친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 2012년 대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입법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1%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잊혀질 권리는 ‘승자의 역사’를 만든다”

잊혀질 권리가 확산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잊혀질 권리는 대중의 ‘알권리’를 침해하며 인터넷 근간을 무너뜨릴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인터넷의 가장 큰 역할은 정보의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개방과 공유로 누구나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정보를 대부분 무료로 쉽게 얻을 수 있게됐다. 주식 정보를 얻기 위해 과거에는 거래소나 증권사를 찾아가거나 신문을 구독했지만 이제는 인터넷으로 원하는 업체를 검색하기만 하면 10년 넘은 자료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가 광범위하게 적용되면 공인이나 기업체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정보만 인터넷에 남겨놓을 가능성이 높다. 잊혀질 권리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사업체에도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자사의 불리한 정보에 대해 삭제 요청도 가능해진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히 잊혀질 권리가 어떤 사람에 대한 검색을 제한하는 ‘인명검색배제권’으로 확대될 경우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발생한다”며 “검색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본과 권력이 많은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을 고용해 삭제 차단시킬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잊혀질 권리가 보장되더라도 ‘힘’ 있는 자가 이 권리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들이 삭제하고자 하는 기록들만 삭제가 되는 ‘승자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권헌영 광운대 법과대학 교수는 “국내에는 임시조치 제도 등 강력한 개인정보보호 제도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와 관련된 가이드라인 추가보다는 업계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겨야 한다”며 “잊혀질 권리 관련 또다른 입법은 창의적인 인터넷 기업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는 ‘임시조치’가 ‘잊혀질 권리’

이미 국내에서는 ‘임시조치’라는 제도로 잊혀질 권리가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임시조치란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게시된 글로 인해 명예훼손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가 블라인드 처리를 요구하면 포털 사업자들은 불법인지 불분명하더라도 우선 30일간 그 글을 차단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연도별 임시조치 건수는 매년 증가추세다. 지난 2008년에는 임시조치 건수가 9만 건에 불과했지만 올 상반기에만 20만 건이 넘었다.

현재는 사용자가 인터넷 사업자에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했을 때 즉시 지워주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엄열 방송통신의원회 개인정보보호윤리과장은 “현재 잊혀질 권리와 관련 해외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국내에 법제화가 필요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며 중요한 사안인 만큼 급하게 법제화하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연구하면서 연말까지는 어느 정도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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