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마을①] 미로같은 산동네 풍경이 여전히 남은 연탄길을 걷다

한국관광공사, 이달의 걷기좋은 길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
글·사진= 태원준
  • 등록 2017-10-04 오전 12:02:48

    수정 2017-10-04 오전 12:02:48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 그럼에도 우리는 ‘연탄’과 ‘산동네’ 등, 희미해져가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상에 젖는다. 그렇게 정겨웠던 지난날을 추억하는 건 지친 삶을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인천둘레길 11코스엔 ‘연탄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름만으로도 이미 어린 시절, 연탄이 그득하게 쌓인 골목길을 누비던 그 때가 떠오른다. 연탄길은 사라져가는 풍경을 아직 붙잡고 있다. 재개발에 밀려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고 미로 같은 산동네 풍경이 아직도 남아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옛 추억을 안겨주는 곳이다.

◇우각로 문화마을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의 시작은 지하철 1호선 도원역에서 시작한다. 도원역을 빠져나와 왼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바로 연탄길 초입이다. 2017년 9월 현재 도로 개선 공사 중이니 반드시 안전 펜스 안쪽으로 걷는 것이 안전하다. 3~4분 남짓 발걸음을 이어가면 굴다리 하나가 나타나고 그 곳을 통과하면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우각로 문화마을이 나타난다. 우각로 문화마을은 한 때 재개발로 인해 숨이 죽어버린 이 지역에 2012년부터 지역문화예술인들이 빈 집 벽에 벽화를 그리며 활기를 불어넣은 곳이다. ‘우각로’라는 이름은 마을의 모습이 휘어진 뿔 모양이라 붙여졌다. 이 부근엔 인천 개항 시기에 조계지에서 밀려난 조선인들에 의해 동네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한국전쟁 이후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의 모여 사는 등 많은 이야기가 얽힌 곳이다.

마을의 역사만큼이나 오랜된 골목길 사이를 걷다보면 담벼락마다 알록달록한 벽화가 나타난다. 재미있는 건 집집마다 벽화가 주욱 이어진 게 아니라 골목길을 걷다보면 간헐적으로 벽화를 마주치게 되는 점이다. 저벅저벅 골목길 사이를 누비다 보면 우각로의 옛 모습이 담긴 벽화와 원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진 벽화가 문득문득 튀어나온다. 마치 벽화와 숨박꼭질을 하는 기분이다. 이쪽으로 가면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행복도서관’이 나오고 저쪽으로 가면 푸른색으로 칠해진 문화마을 사무소가 나온다

조금 더 높은 언덕으로 향하니 햇살 좋은 날을 맞이해 마을 지천엔 고추가 마르고 있다. 꼬부랑 할머님들이 소쿠리에 고추를 가득 담아와 그냥 바닥에 휙휙 뿌리고 지나가신다. 덕분에 조심조심 고추를 피해가며 걸어야하지만 정겨운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난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면 마을 구 전도관이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한다. 고종의 주치의였던 알렌 미국영사가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는 교회 예배당으로 사용 중이다. 제법 가파른 산동네 꼭대기에 위치해 있기에 전도관 담벼락에 오르면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그래도 마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니 그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쉬어가면 좋다. 단 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은 아니지만 그 안을 걸으면 점점 빠져들게 되는 풍경이다. 길도 사람도 천천히 빠져드는 것이 좋다.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
◇금창동 주민센터에서 창영 초등학교까지

우각로 문화마을을 빠져나오면 인천세무서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주변엔 유독 오래된 전통가옥들이 이어진다. 삐걱거리는 나무집들을 지나치다보면 시간여행이 시작되는 듯하다. 점차 사라져가는 풍경들을 만날 수 있어 호기심에 절로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세무서 지나 금창동 주민센터로 이어지는 언덕길에도 형형색색 벽화가 이어진다. 동명초등학교 담벼락을 가득 메운 벽화는 ‘금창 어린이집’. ‘창영사’등 지역 상호까지 넣어 그렸다. 세심하게 그린 벽화를 보며 이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흐뭇했을지 생각하니 나까지 흐뭇해진다. 이 주변은 어르신들이 많은 지역이다 보니 골목이나 거리에 낡은 쇼파와 의자가 생뚱맞게 놓여있다. 그래서 골목길 자체가 어르신들께는 쉼터이자 수다방이 된다. 재잘거리는 꼬마들의 목소리보단 손뼉을 치며 대화를 나누는 할머님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금창동 주민센터를 지나 내리막길을 내달리면 창영초등학교가 나타난다. 그냥 지나치기엔 섭섭한, 역사가 숨쉬는 초등학교다. 1907년에 개교한 창영초등학교는 1919년 인천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으로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순국선열들의 그 외침이 내후년이면 백 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창영 초교의 담벼락에도 벽화가 촘촘한데 벽화의 작가는 모두 창영 초교의 학생들이다. 작은 타일에 고사리 손으로 그려 넣은 그림들이 모자이크처럼 이어진다. 학교 앞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물고 걸으니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다시 추억에 잠긴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창영 초등학교에서 이어지는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연탄길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다. 언제 찾아가도 반가운 헌책방이 줄줄이 이어지기도 하고 최근엔 인기드라마 ‘도깨비’가 촬영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한미서점은 이 동네 최고의 인기 서점이다. 노란색 페인트로 곱게 외관을 칠한 서점엔 인증샷을 찍기 위해 몰려든 여학생들이 키득거리며 사진을 남긴다.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서점 입구에 늘어선 독특한 디자인의 미니북을 하나 사들었다. 괜스레 소녀감성이 폭발한다.

늘어서 있는 헌책방들을 하나씩 둘러보며 나만의 노다지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자의 삶과 추억이 녹아든 오래된 잡지와 이제는 보기 힘든 굵직한 백과사전 등을 훑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하지만 헌책방뿐만 아니라 곳곳에 숨어있는 문화공간들이 또 다리를 붙잡는다. 독특한 분위기가 흐르는 갤러리와 올드팝이 흐르는 작은 카페도 있으니 잠시 걷기를 멈추고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송현근린공원과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연탄길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은 송현근린공원과 그 안에 자리 잡은 달동네박물관이다. 수도국산에 조성된 송현근린공원까지는 구불구불한 언덕을 한참 올라야 한다. 입에서 투덜투덜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가파른 길이지만 공원에 다다르면 그런 불만이 쏙 들어간다. 공원 입구에 늠름하게 서있는 조선 말기의 무신, 어영대장 신정희 장군 동상 너머로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물론 송현동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기 때문이다. 산에 조성된 공원이기에 전망만큼은 확실히 보장된다. 전망만 뛰어난 게 아니라 공원 내엔 분수 광장은 물론 다양한 체육공간과 조경시설 및 산책로까지 꼼꼼하게 들어서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공원에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독특하기로는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법한 재미있는 박물관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달동네박물관‘으로 1960~1970년대 수도국산 달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박물관이다. 박물관 안에 달동네 하나를 통째로 들여놓았다 생각하면 된다. 지상 1층과 지하 1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엔 60~70년대에 달동네를 수놓았던 사글세 단칸방, 솜틀집, 연탄가게, 구멍가게가 실감나게 복원되어 있다. ’쥐를 잡자‘라는 구호가 적힌 포스터와 그 당시 유행했던 영화 포스터까지 담벼락에 빼곡하게 붙어있다. 심지어 전시된 인물 모형들은 모두 이 지역 달동네에 살았던 실존인물들을 모델로 했다고 하니 그 세심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달동네 박물관에서 동인천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끝으로 연탄길 코스를 마무리한다. 코스의 어느 지점을 걸어도 과거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세대를 불문하고 옛 추억이 샘솟는 인천둘레길 11코스 연탄길. 인천이라는 대도시 한가운데에 이런 걷기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선물이 아닐까.

◇여행메모

△코스경로 : 도원역~우각로문화마을~인천세무서~금창동주민센터~창영초등학교~배다리 헌책방거리~송현근린공원~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동인천역

△거리 : 5.2㎞

△소요시간 : 1시간 20분

ㅇ 난이도 : 어려움

ㅇ 문의 :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032-433-2122

ㅇ 자세히 보기 : http://www.koreatrails.or.kr/course_view/?course=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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