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은 한국인 김범석은 미국인…공정위 총수 지정 엇갈린 이유

네이버 반대에도 공정위 직권으로 '이해진' 지정
쿠팡은 김범석 의장 미국인이라 '쿠팡'으로 지정
똑같은 플랫폼 기업인데 규제 적용은 달리해
87년대 만들어진 동일인·재벌 규제에 '균열'
  • 등록 2021-04-07 오전 12:00:00

    수정 2021-04-07 오전 8:24:51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왼쪽),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사진=네이버·AFP)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한광범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을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기로 결론 내자 네이버와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네이버도 쿠팡과 비슷한 지배구조, 경영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는 한국인이라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되고, 김범석 쿠팡 의장은 미국 국적이어서 총수지정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과거 재벌에 적용하던 낡은 규제를 별다른 손질 없이 경영방식에 차이가 큰 IT기업까지 같은 잣대로 적용하다보니 발생한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네이버는 직권으로 ‘이해진’ 지정

공정위는 지난 2017년 네이버의 동일인은 ‘네이버 주식회사’가 아닌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로 정했다. 이 GIO가 대주주 중 유일하게 아사회 내 사내이사로 재직해 실질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이 GIO의 네이버에 대한 지분율은 적지만, 경영 참여 목적이 없는 투자자를 제외하면 개인 최대 주주에 해당한다는 것도 반영했다.

네이버는 그간 이 GIO의 지분이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에 비해 적은데다, 전문경영인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계를 확립하고 있어 과거 재벌처럼 이 GIO를 총수로 지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기존 재벌과 잣대가 달라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공정위는 수용하지 않았다. 이후 2020년 이 GIO는 대기업집단 신고 과정에서 자신이 소유한 회사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고발까지 당했다. 검찰은 고의성이 없다며 불기소처분을 내렸지만, 총수 지정에 따른 혹독한 ‘신고식’을 치룬 셈이다.

쿠팡은 김 의장이 명백한 최종 의사결정권자다. 쿠팡의 상장 이후 김 의장의 지분율은 10.2%다. 지분 순위로 보면 소프트뱅크비전펀드(33.1%), 그린옥스캐피털(16.6%), 닐 메타(그린옥스캐피털 대표, 16.6%) 에 이어 4위에 불과하지만, 김 의장이 가진 주식은 100% 클래스B 보통주다. 이는 1주당 29표의 의결권을 갖는 차등의결권주로, 김 의장은 상장 후 의결권 76.7%를 보유하고 있다.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총수 지정이 당연하다. 그러나 공정위는 김 의장 국적이 미국이라는 이유로 동일인 지정에서 제외했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쿠팡 모두 과거 재벌과 다른 투명한 지배구조를 보유하고 있고, 총수 일방적인 의사결정구조와 다른 이사회 중심의 경영방식을 택하고 있다”면서 “둘다 동일인 지정을 할 필요가 없는데다 국적을 이유로 지정을 달리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법인이 아닌 개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냐 아니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동일인이 개인이면 동일인을 중심으로 6촌이내 혈족, 4촌이내 인척의 주식소유 현황 등 각종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반면 법인은 계열사 정보만 제출하면 된다. 자료 제출을 잘못하면 동일인이 최대 검찰 고발을 당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법인 고발과 총수고발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87년 만들어진 동일인, 재벌 규제에 균열

공정위는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지만, 사실 공정거래법에는 ‘동일인’ 기준 기준은커녕 정의조차 없다

법에는 ‘기업집단은 동일인이 사실상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회사의 집단’이라고만 규정돼 있다. 동일인 지정 기준인 ‘사실상 지배’ 여부는 시행령에서 지분율 또는 지배력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이 조차도 모호하지만, 동일인의 국적여부를 따지는 조항은 아예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일인 정의 규정에는 없지만 미국 국적 기업인에 대한 규제를 하다보면 경제주권(국가가 국경 내에서 이뤄진 경제생활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그간 국내인만 동일인으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이는 1987년대 만들어진 동일인 지정방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낡은 재벌규제가 균열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여지껏 가족 간 선단식 경영 방식을 고려해 동일인을 중심으로 6촌이내의 혈족, 4촌이내의 친족까지 규제 대상에 넣으면 대기업집단을 공정위 감시망에 넣을 수 있었다. 총수일가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차원이었다. 하지만 순환출자 등 가공자본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총수 개인이 아닌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하는 IT기업들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기존 재벌규제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로펌 관계자는 “아직 일부 업에서 과거 재벌과 똑같은 방식의 순환출자, 일감몰아주기가 있어 공정위가 재벌규제를 획기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하지만 IT기업 등장으로 재벌규제가 이젠 균열이 가고 있어 공정위에서도 적극적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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