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보다 고객의 잠재욕구를 한발 앞서 파악해 이를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경쟁이 전자업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는 해당업무를 전담하는 별도조직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15년 생활가전 세계 1위라는 목표를 세우고 각 유럽, 미주 등 주요 대륙에 ‘라이프스타일랩(LRL, Lifestyle Research Lab)’과 ‘프로젝트 이노베이션 팀(PIT, Project Innovation Team)’이라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는 전자업계 최초로 지난 1989년 생활문화연구실을 설립한 이후 발전된 ‘라이프 소프트 리서치(LSR, Life Soft Research)’라는 조직에서 제품 콘셉트를 발굴하고 새로운 사업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품의 특성이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업종의 특성상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고객이 미처 알지 못하는 잠재욕구까지 파악해 제품화하는 것이 본질적인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학·심리학 등 다양한 전공자들이 특수부대처럼 움직여
LG전자 관계자는 “LSR연구실의 경쟁력은 고객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것”이라며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뇌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고객전문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LRL도 인간행동학, 엔지니어링, 심리학 등 다양한 연구와 업무 경험자들로 구성돼 소비자 통찰력의 융·복합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
LRL을 이끌고 있는 이윤철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략마케팅팀 상무는 “LRL은 과학에서 기초과학과 같은 업무를 하는 곳”이라며 “생산 또는 생산예정인 제품과는 관계없이 잠재적 소비자인 사람들의 미래 생활에 관해 체계적인 예상을 해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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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안구 추적, 뇌파반응, 동작 측정 등 다양한 기술을 총동원해 소비자의 반응을 연구한다. LG전자의 LSR 연구실에서는 고객들이 매장 내에서 제품을 만져볼 때의 뇌파 반응을 분석, 제품 전면에 차별화된 디자인을 더할 경우 소비자들이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점을 발견했다. 특히 입체감 있는 디자인일 경우 만져보는 고객이 1.5배 가량 많았다는 사실을 발견해 디오스 V9100 냉장고를 금속 소재 위에 미세한 입자로 패턴을 새긴 디자인을 적용해 소비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삼성전자의 LRL은 3년, 5년, 10년 뒤의 가족구성, 주거환경, 음식, 의복을 비롯한 생활문화의 변화를 예측한다. 이를 위해 소비자의 일상 생활을 하루종일 관찰해 미래 경향의 출발점을 발굴하고, 현재 시장을 주도하는 소비자나 사회과학 연구자들과 특정 주제에 대해 일주일의 ‘토론 대장정’을 펼치기도 한다. 또 지역별 특화제품을 생산하는 데 LRL과 PIT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미향 냉장고에는 칸막이가 별로 없지만, 유럽향 제품은 용도마다 수납공간이 마련됐다.
삼성전자의 이 상무는 “생활가전 사업에서 LRL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제품 개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