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3일' 난초 가득하던 '꽃섬', 쓰레기섬이 되다[그해 오늘]

서울시, 1978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지정
15년동안 9200만t 매립…100m 쓰레기산 변모
'한국 가난의 상징'서 2002년 생태공원 탈바꿈
  • 등록 2022-08-03 오전 12:03:00

    수정 2022-08-03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78년 8월 3일. 철 따라 온갖 꽃이 만발한다 하여 ‘꽃섬’으로 불리던, 서울 서북부의 난지도가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됐다.

많은 이들에게 ‘쓰레기섬’으로 기억되는 난지도는 원래 풍경이 아름다운 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강 지류인 모래내와 홍제천, 불광천이 물머리를 맞대고 들어오는 한강 하류 저지대에 흙모래가 쌓여 자연스레 만들어진 섬에 난초와 지초가 자라며 이름도 ‘난지도’(蘭芝島)가 됐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되던 시절 난지도 쓰레기산 모습. (사진=서울시)
쓰레기 매립 이전 난지도에선 꽃·배추·무·땅콩이 재배됐다. 특히 땅콩은 전국 생산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수확량이 많았다.

1970년대만 해도 서울 외곽에 위치한 것으로 인식됐던 난지도는 1978년 서울의 각종 쓰레기가 모이는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며 거대한 ‘쓰레기섬’이 됐다.

난지도에는 1993년까지 15년간 서울과 인천 등의 생활쓰레기와 산업폐기물 등 9200만t이 매립됐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로 인해 당초 해발 8m의 저지대였던 난지도는 각각 98m, 94m 높이의 거대한 쓰레기 산 2개가 생겨났다.

계속된 쓰레기 매립으로 포화상태에 이르고 썩은 쓰레기가 분출하는 메탄가스로 폭발 사고가 발생하는가 하면, 침출수로 인한 한강 오염 등이 계속되자 정부는 결국 1993년부터 쓰레기 반입을 중단했다.

거대한 쓰레기섬 난지도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았다. 현재 우리가 해외 토픽에서 접할 수 있는 ‘쓰레기장을 뒤지는’ 넝마주이들이 수백여 채의 판자촌을 형성해 거주했다.

거주한 인원은 최대 1000명에 달했고, 1993년 쓰레기 매립이 중단된 당시에도 400여 명이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악취와 파리떼가 들끓는 난지도와 이를 뒤지는 넝마주이들의 모습은 ‘가난한 한국’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국내외 언론에 자주 소개되기도 했다.

생태 복원 전 난지도 일대 모습. (사진=서울시)
생태 복원 후 난지도 일대 모습. (사진=서울시)
매립 중단 이후에도 쓰레기섬으로 인한 국가 이미지 추락과 인근 주민들의 악취 민원 등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쓰레기산에 흙을 쌓는 복토작업을 진행하고, 오염수의 한강 유입을 막기 위한 방벽을 설치했다.

정부는 이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상암동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며 인근 난지도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착수해 2002년 5월 노을공원, 하늘공원 등을 포함한 월드컵공원의 문을 열었다. 난지도 매립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등은 월드컵공원과 서울월드컵경기장 시설의 열에너지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난지도 인근 상암동 일대엔 디지털미디어시티(DMC)를 조성했다. 현재 DMC는 업무지구와 주요 언론 및 방송사 등이 위치하며 서울의 주요 상업·주거지역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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