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매출 10조 회사를 300조로…삼성 총수 이건희 사망[그해 오늘]

2020년 10월25일 이건희 삼성 회장 사망
1987년 그룹 물려받아 2014년 와병 때까지 삼성 성장 주도
반도체 등 신사업으로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내
  • 등록 2022-10-25 오전 12:02:00

    수정 2022-10-25 오전 12:02: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한국 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020년 10월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만에 영면했다.

(사진=SBS 캡쳐)
46세이던 1987년 회장에 취임해 27년간 삼성을 이끌면서 취임 당시 매출 10조원이 채 안 되던 삼성을 매출 300조원대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2020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623억 달러로 글로벌 5위에 올라 있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 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경남 의령의 친가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유년 시절에는 말수가 많지 않은 조용한 아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이 회장은 1966년 10월 중앙일보·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주식회사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쳤다.

이후 이병철 회장이 작고한 뒤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8남매 중 일곱째이자 막내아들이었던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건 형들이었던 이맹희·이창희가 아버지를 고발했던 이른바 ‘왕자의난’의 실패로 후계구도에서 밀려나면서다.

이 회장은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8년에 삼성의 제2창업을 선언했다.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했는데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고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세계 1위에 올라서는 등 성공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회장의 혁신에 대한 욕심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놓고 다 바꿔봐.”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이 회장은 적극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삼성전자 고문이던 일본 디자이너 출신 후쿠다 다미오의 ‘후쿠다 보고서’도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삼성 로고를 현재의 것으로 바꾸면서 ‘신경영’을 앞세웠다. 이즈음 행해졌던 ‘애니콜 화형식’은 현재의 갤럭시 신화의 발판으로도 여겨진다.

1988년 국내 최초 휴대전화 애니콜을 선보였던 삼성이지만 모토로라를 따라잡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데만 급급해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았다. 이 회장은 이에 격노해 15만대의 애니콜을 모두 불태웠다. 총 500억원 규모였다.

극단적인 질적 개혁을 추구한 이 회장의 강드라이브로 삼성전자는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디지안 혁명으로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 제고에도 나섰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돌발 상황
  • 2억 괴물
  • 아빠 최고!
  • 이엘 '파격 시스루 패션'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