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弗 훔쳤다"..피해자없는 '정치자금' 절도사건[그해 오늘]

고관대작 자택 털어온 절도범 김강룡씨 증언 파문
유종근 전북도지사 집서 12만불 절도 주장했으나 '무죄'
실세 정치인 당사자가 "도둑맞지 않았다"고 부인하며 종결
"마약중독" 헤프닝이었다지만, 당사자는 훗날 수뢰죄 유죄
  • 등록 2023-03-07 오전 12:03:00

    수정 2023-03-07 오전 12:03: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고관대작의 집을 털어오다가 덜미가 잡힌 절도범 김강룡씨. 김씨는 검찰에서 그간 절도 행각을 순순히 불었다. 개중에는 “1999년 3월7일 유종근 전라북도지사의 서울 사택을 침입해 현금 3500만원과 미화 12만 달러를 훔쳤다”는 진술이 있었다.

현장검증에 나선 김강룡씨.(사진=문화방송)
유 지사는 당시 김대중 정부 실세 정치인이었다. 미국 럿거스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있던 류 지사는 1987년 평화민주당 김대중 대선 후보 캠프에 합류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경제 정책을 마련하고, 대통령에 당선하고서는 IMF 위기(1997년)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제 고문으로 활약했다. 스스로 자신을 “김대중의 측근”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정치인으로서는 1995년 전북도지사에 올랐다. 지방자치 행정가로서 보인 정치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정치인의 돈을 훔쳤다고 도둑이 자발적으로 증언했으니, 수사 당국은 기를 써서라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검찰은 김씨의 12만 달러 부분을 기소하지 않았다. 도둑이 벌을 받겠다는데, 검찰이 벌하지 않겠다는 상황도 이례적이다. 수사 결과 김씨의 진술이 허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자로 지목된 유 지사의 얘기도 마찬가지였다. 유 지사는 “도둑맞은 것은 3500만원뿐”이라고 했다.

도둑은 있는데, 피해자는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른 피해자도 마찬가지 비슷했다. 안양경찰서장과 용인경찰서장도 김씨에게 도둑을 맞았는데, 김씨가 훔쳤다고 주장하는 액수보다 이들이 도둑을 맞았다고 밝힌 액수는 더 적었다.

당사자 간에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김씨가 필로폰 중독자”라는 점이 부각됐다. 김씨는 붙잡히고 수감 중에 마약 금단 현상을 겪으며 자주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었다. 그도 그럴 게, 김씨는 수사기관에서 “1999년 1월 초 김성훈 농림부장관 집에서 시가 6억원과 3억원의 그림 두 점을 훔쳤다”고 진술했는데 조사해보니 그림을 도둑맞은 이는 김 장관이 아니라 한 사업가였다. 애초 김 장관이 “도둑맞은 게 있다”고 했다가 번복한 것도 혼란을 키우긴 했지만, 결국 김씨가 김 장관 집을 착각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김씨는 다른 장관 두 명의 집도 털어 금괴를 훔치고 황금 변기를 봤다고 했으나 수사당국은 이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반발했다. 진사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유 지사가 현금 3500만원과 12만 달러를 조성한 경위 등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현금 3500만원은 재산으로 신고한 현금의 일부였다고 밝혔다. 다만 12만 달러는 애초에 유 지사가 존재 자체를 부인했기에 수사 당국은 판단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유 지사 사택에 대한 현장검증 요구가 일었다. 그러나 피해자 유 지사가 거부하자 검찰도 포기했다. 유 지사는 “12만 달러가 사실이면 지사직을 사퇴하겠다”고까지 강경하게 나갔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대변인과 이회창 총재 등을 형사 고소하고 이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다. 훗날 법원에서 김씨는 유 지사의 3500만원 절도만 유죄가 인정됐고, 유 지사는 한나라당 관계자를 낸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명예를 회복했다.

이후 유 지사는 16대 대선 후보자로까지 부상했으나, 수뢰죄로 2002년 3월 구속되면서 정치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인허가 민원을 해결하는 대가로 1997~98년 기업체에서 4억원을 받은 혐의였다. 이 혐의는 2005년 1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과 추징금 3억원으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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