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다이어트'도 안 먹힌 덴 이유 있다

美 유명 ''건강블로거''
건강식 좇다 건강 망친 뒤
"모두에 맞는 건강식 없다"
채식·잡식 건강식 90% 같아
10%는 유전자가 판가름 해
포기 싫은 건 포기 않으며
스트레스 안받는 일상 중요
……………
식탁의 비밀
케빈 지아니|344쪽|더난출판
  • 등록 2017-07-19 오전 12:15:00

    수정 2017-07-19 오전 12:15:00

[이데일리 오현주 선임기자] 한 남자가 여행을 떠났다. 목적은 하나다. 건강법을 찾자는 거다. 아주 현실적인 건강법. 그동안 그는 세상에 알려진 건강식이란 건강식은 다 따라했다.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 때까지 오로지 식단만 고민하고. 육류와 설탕, 커피와 와인을 끊고 녹차를 마셨다. 채식주의자임에도 지방을 더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를 더 많이 섭취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어라? 점점 체력이 바닥을 치는 게 아닌가. 몸이 망가지는 게 느껴지는 건 물론 날로 살까지 쪄댔다. 그는 미국서 이름만 대면 대충은 아는 명색이 ‘건강블로거’.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유튜브 등 온갖 매체서 조언이랍시고 늘어놓았던 모든 게 자신을 그 꼴로 만든 거다.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슈퍼푸드·영양보충제·음식궁합·영양소균형 등등 그간 내가 배운 것은 모조리 효과가 없었다.” 건강과 식품, 영양에 권위자인 척 떠들어댔던 일이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쩌겠나. 하루아침에 사기꾼이 된 마당이니 떠날 수밖에.

2년 6개월 험한 오지의 길만 골라 다녔다. 페루의 안데스산맥, 멕시코의 소금광산, 미국 캘리포니아의 돼지농장 등. 탐색만 하고 다닌 것도 아니다. 뇌 스캔을 받고 식품 독성검사를 하고 물 단식에다가 극한 스포츠까지 병행하며 ‘식탁의 계시’가 떨어지길 바랐다. 그러자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품위를 갖춰 말하자면 건강·영양을 둘러싼 온갖 과대선전에 혹한 거고, 성질 다 드러내고 말한다면 허황된 속설이 엉켜 있는 수도 없는 난센스에 속은 거였다.

책은 미국의 유명 건강블로거가 건강식만 챙기다 건강을 망치면서 얻은 ‘천지개벽 깨달음’을 조목조목 정리한 것이다. 표어 같은 타이틀도 큼지막이 박았다. ‘건강한 음식이 우리를 병들게 만든다.’

△깡마른 채식주의자가 뚱뚱해진 까닭

그래도 채식이 답이 아닐까. 건강의 동의어처럼 쓰이니까. 그런데 아니다. 저자가 그랬지 않나. 생식을 고집하고 꿀이나 달걀도 먹지 않는 ‘비건’(vegan)으로 살았다. 건강법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 전 플로리다의 한 한의사가 저자에게 야박하게 내린 진단은 ‘부신 이상’이었다. 한마디로 동물성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처방이었다. 고기를 먹지 않아 건강해진 것이 아니라 고기를 먹지 않아 건강이 상한 것이다. 채소만 먹고도 뚱뚱해진 건 식단의 불균형 탓이었던 거고.

사람이 고기를 조금이라도 먹어야 하는 건 육류 전체가 가진 영양가의 차원이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단백질 보충? 철분이 모자라서? 이런 걸로는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TV가 작동하는 이유로 LED스크린이나 전원상태 따위로 달랑 한 가지만 꼽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단언한다.

이런 논리도 성립한다. 일본 오키나와 사람들은 장수한다. 먹는 걸 봤더니 사케를 즐기더라. 술은 건강에 해로운 줄 알았더니. 아닌가? 저자가 볼 때 세상에 이렇게 단순한 공식은 없다. 온종일 걷기, 가족과 시간 보내기, 공동체 활동, 낮은 스트레스 등 오키나와 사람들의 사케 외 일상을 못 봤다면. 그들이 매일 반복하는, 장수에 지극히 보탬이 되는 활동들이 술의 부정적 영향을 누르고 있는데 말이다.

△판가름은 ‘유전자’가 낸다

음식을 둘러싼 혼란이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되는 이유는 뭔가. 저자는 여전히 건강식단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아서란다.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음식이 다른 사람에겐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몰라서 하는 소리란 거다. 원인은 간단하다. 사람마다 유전자 구조가 생판 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환경적 요인까지 발생했다. 모든 원시인이 똑같이 먹었다는 육류와 해산물, 달걀과 과일 위주의 이른바 ‘구석기 다이어트’도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 유전자가 구석기인의 유전자와 크게 달라진 요인도 있다. 그러니 유전자의 절대법칙을 무시해 탈이 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다고 개개인의 예민한 차이를 고려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채식이든 육식이든 잡식이든 건강한 식단이란 건 80∼90%가 동일하다고 했다. 판가름은 나머지 10∼20%에서 난다. 각자의 유전자 발현방식에 따라서.

구석기시대와 달라진 밥상 위에 한 가지만 더 얹자. 독소다. 공기와 물, 음식까지 이제 세상엔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은 ‘천연’이란 건 없게 됐다. 생선과 달걀은 물론 아기 이유식에도 중금속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니까. 몸속에 쌓아둔 화학물질은 평균 212종이나 된다고 했다. 그러니 몸에서 독소를 빼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애초에 몸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거다. 천연세제를 쓰고, 플라스틱 대신 유리나 사기그릇을 사용하며, 수도꼭지에 정수 필터를 다는 일 등이 도움이 된다고 꼽았다.

△일상 혹은 건강? ‘구차한 변명’ 말아야

남은 궁금증은 저자의 건강상태다. 자연건강법을 좇은 저자가 과연 살을 빼고 기력을 회복했을까. 날짜를 꼽기 시작한 233일 중 집에서 저녁 먹은 날은 절반도 안 됐다. 운동은 설렁설렁 한 주에 네 번 정도. 생일케이크도 맘껏 먹었고 와인도 적당히. 감자튀김을 배부르게 먹은 날도 있다. 그러다가 체중계에 올랐다. 결과는 놀라웠다. 15㎏이 줄어든 거다. 그저 일상생활을 충실히 했을 뿐인데.

저자의 경험대로라면 건강유지법은 대단히 간단하다.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란다. 다이어트 한다고 동네방네 소문 다 내고, 탄수화물은 입에도 안 되고, 술·설탕도 참고, 풀만 먹고, 죽어라고 뛰고 달리고. 그래 봤자 20㎏ 빼면 많이 뺀 거 아니겠느냐는 거다.

생생한 필담이 블로거의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준다. ‘만병통치 빨간약’ 같은 건강식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무리가 없다. 일과 건강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게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는 걸 믿고 싶게 한다. 자신이 바로 그 증거라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는 것도 밉지 않다.

결국 책은 ‘구차한 변명 따윈 집어치우라’는 강력한 입막음이 됐다. ‘일이 바빠 대충 먹었더니’ ‘운동해도 안 빠지는 체질’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 등은 말짱 헛소리가 됐다. 이 경고도 무시하고 그저 남들 따라 먹고 빼다간 자괴감에 2년 6개월 오지탐험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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