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 망쳐놓고 다른 행성 찾는 건 옳지 않아"

인류 직면한 중대 문제들
부국·빈국 가르는 '지리·제도'로 분석
빈곤국, 열대지역 많고 의욕자극 제도도 열악
기후변화·부의 불평등 가장 심각
탄소배출축소·해외원조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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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재레드 다이아몬드|224쪽|김영사
  • 등록 2016-05-04 오전 6:17:00

    수정 2016-05-04 오전 7:47:30

인류역사의 탄생·진화가 총·균·쇠로 결정됐다는 ‘총·균·쇠’(1997)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신작을 들고 ‘인류 희망 만들기’에 나섰다. 지난 50여년에 걸친 문명의 발생과 이동, 성장과 몰락을 집약한 결과물로 지구를 떠날 건가 지킬 건가를 두고 벌인 ‘지구별 담론’에 결정적 한방을 찍는다(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지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달랑 50년뿐이다.” 그러니 어찌해야 하는가. 해결책이 급하다. 50년이란 한계상황을 만든 현재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물론 50년을 최대한 연장하는 미래의 복안까지 마련해야 한다. 당장 명확한 건 하나다. 지금처럼 산다면 인류에게 50년 뒤 남아있는 건 없을 거란 것이다.

이 경고는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79·UCLA 지리학과 교수)에게서 나왔다. 이미 10년 전인 2006년 ‘문명의 붕괴’를 출간할 때였다. ‘이제 지구별은 시한폭탄일 뿐’이라고 못박았다. 그 와중에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74)이 ‘지구별 담론’에 가세했다. 지구별에서 인류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1000년뿐이라고. 그러니 어서 다른 행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 그대로 ‘지구를 떠나라’는 선언이었다. 우위를 다툴 수 없는 두 석학의 인류를 향한 포고성 메시지였지만 다이아몬드의 그것이 좀더 절박하고 좀더 긍정적인 신호로 읽혔다. 왜냐고? “지구별을 망쳐놓고 다른 행성을 찾아가는 것이 정답일 수 없다”는 희망의 꼬투리를 던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남는 것은 지구별과 그 안의 인류까지 구해내는 진짜 답을 얻어내는 거다.

인류역사의 탄생·진화가 총·균·쇠로 결정됐다는 ‘총·균·쇠’(1997)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다이아몬드가 신작을 들고 ‘인류 희망 만들기’에 나섰다. 지난 50여년에 걸친 문명의 발생과 이동, 성장과 몰락을 집약한 결과물로 ‘지구별 담론’에 결정적 한방을 찍는다. 논의할 주제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인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다. 그중 궁극적인 관심은 이것. ‘왜 어떤 국가는 잘 살고 또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다. 경제학자와는 다른 시각으로 인류의 영원한 숙제에 열쇠를 꽂은 것이다. 지리와 제도가 국부에 미치는 영향을 찾고, 성장 이면에서 환경·인구문제를 앓는 중국을 헤집으며, 발등에 떨어진 기후변화·불평등을 해결할 묘안을 짜냈다.

큰 얘기다. 감히 아무나 던지고 답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판단은 확고하다. 지구별에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고민이란 거다.

▲부국·빈국 가르는 결정적 카드

다이아몬드가 볼 때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가르는 요인은 명쾌하다. 지리와 제도. 대체로 위도상 온대지역의 국가가 열대지역의 국가보다 2배는 풍요롭다고 진단한다. 여기에 한 국가의 성장을 촉진하고 의욕을 자극하는 제도를 갖췄다면 더 부유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예라면 이해가 쉽다. 잠비아와 네덜란드. 아프리카에는 비교적 민주적인데다가 전쟁도 없었고, 석유·천연가스까지 풍부한 잠비아가 있다. 유럽에는 땅이 해수면보다 낮아 댐으로 하는 수력발전은 꿈도 못 꾸고, 땅에 묻힌 광물이 거의 없으며, 독일과 국경을 맞댄 불운까지 견뎌야 했던 네덜란드가 있다. 그런데 왜 잠비아는 네덜란드보다 못사는 건가.

바로 이 의문을 푸는 것이 부국과 빈국을 나누는 카드란다. 잠비아는 네덜란드보다 농업생산성이 떨어지고 공중보건이 열악하다. 네덜란드에는 잠비아와 비교가 안 되는 2000년 된 문자, 500년 된 중앙정부가 있다.

▲극복할 가능성 51%, 못할 가능성 49%

미국인에게 세상살이에서 위험한 일 몇가지를 꼽아보라고 했다. 테러리스트 공격, 항공기 추락, 원자력 발전소 사고, 유전자 조작식품 등이 나왔다. 과연 사망률은 얼마나 될까. 거의 0%다. 하지만 정작 통제할 수 있는,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위험은 되레 과소평가된다. 가령 자동차사고, 음주와 흡연 같은 것 말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샤워’란다. 샤워할 때 생기는 낙상사고 말이다. 앞으로 15년을 더 산다고 할 때 매일 1회씩 5475회의 샤워를 하게 될 거고 넘어질 확률을 1000분의 1만 잡아도 최소한 다섯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계산이다.

문명학자답게 세계 구석구석을 넘나든다. 집안 욕실까지. 이쯤 되면 이 대단한 석학이 가장 걱정하는 게 무엇일지가 궁금해진다. 바로 지구의 기후변화였다. 앞으로 10년 내 인류에게 가장 큰 파괴력을 가져올 거라 단언했다. 딱 보이는 원인은 이산화탄소 배출. 다이아몬드는 여기에 가뭄, 식량생산의 감소, 해수면 상승 등을 붙여 자신만의 걱정꾸러미를 완성했다. 큰 우려는 하나 더 있었다. 부의 불평등이다. 노르웨이가 세계서 가장 가난한 국가인 니제르공화국·브룬디보다 400배쯤 부유하다는 전제를 깐 뒤, 결국 질병과 이민, 테러 등도 이런 극도의 국가 간 불평등으로 유발된다고 했다. 국가 내 불평등도 사정은 같다. 권력을 잡은 1%만 행복하고 나머지 99%가 불행하면 반드시 혁명이 따를 거란 평소의 소신을 붙였다.

그렇다면 걱정을 덜어낼 방법은 없나. 있긴 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도록, 소비를 줄이고 아이를 적게 낳도록 국가·개인을 유도하는 것. 부자나라의 해외원조프로그램을 늘리고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것.

▲인공지능·로봇, 인간의 삶에 실용적 변화만 줄 것

인류의 미래를 염려하는데 로봇과 인공지능이 빠질 순 없지 않나. 인간의 삶을 얼마나 바꿔 놓을까에 대한 대답은 꽤 낙천적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가져올 변화는 실용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게 다이아몬드의 생각이다. 휴대폰·자동차·이메일이 있어도 인간의 근본적인 걱정거리는 과거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결국 인간은 가장 인간적인 주제, 다시 말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건지, 분쟁을 어찌 해결할지, 건강은 어떻게 지킬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단 논지다. 그래서 ‘장밋빛 미래’라는 말도 선뜻 할 수 있단다. 지금보다 나은 선택만 한다면.

‘큰 얘기’라고 앞서 박아둔 것이 위안이 될까. 그렇다고 책을 읽는 데 절절한 인내심이 필요한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쉽다. 원체 이탈리아 로마 한 대학의 학생들을 위한 강연으로 준비한 것이라니. 다만 제목이 주는 위압감이 가독률을 떨어뜨리는 건 사실이다. 원제는 ‘컴페어링 휴먼 소사이어티’. 인간사회를 다채롭게 비교해보겠다는 다이아몬드의 충실한 의도가 번역본 제목에서 지나치게 확대재생산됐다. 마땅히 ‘한치도 나와 세계에서 벗어날 순 없다’에 찍은 방점이겠지만, 지구별에 불시착할 구조선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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