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손에 잡힐 듯 그리운 금강산, 끊긴 철길 위에 희망을 싣다

강원도 고성 비무장지대로 들어서다
남쪽 최북단 자리한 기차 역사 '제진역'
단 한번 운행 후 11년간 철길 끊겨
최전방 군 관측소 '금강산전망대'
금강산·해금강 등 생생히 볼 수 있어
강릉 최씨와 함씨의 집성촌 '왕곡마을'
  • 등록 2018-09-14 오전 12:00:00

    수정 2018-09-14 오전 12:00:00

금강산전망대(717OP)에서 바라본 금강산과 북녘 풍경.


[강원도 고성= 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단 한 번의 열차 운행을 끝으로 기억에서 사라진 역사(驛舍)가 있다. 바로 강원도 고성의 동해선 제진(猪津)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 끝단에 자리한 기차 역사다. 위도상 북한의 개성시보다 70km 더 북쪽에 있다. 여기서 선로를 따라 북쪽으로 10.5km만 더 올라가면 북한의 감호역에 도착할 수 있다.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에 따라 남북출입사무소를 설치할 때 들어섰다. 하지만 2007년 5월 열차가 금강산~제진 구간을 한차례 시험 운행한 이후 사실상 멈춰 섰다. 이곳에 있던 객차와 기관차도 모두 철수하면서 잊힌 역사가 됐다. 그렇게 역사(歷史)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동해선이 11년 만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 동해선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남쪽의 마지막 역사 제진역을 보러 강원도 고성으로 향한다.

제진역 앞 동해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 전경


◇단 한 번의 운행만 허락했던 ‘제진역’

가을 문턱에 찾은 제진역은 스산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라 더 쓸쓸했다. 이곳으로 가는 방법이 쉽지 않은 게 큰 이유다. 민간인출입통제선(이하 민통선)에 맞닿아있는 지역이어서다. 일단 두 차례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육군 제22사단의 검문 초소를 통과한 후 출입사무소 게이트 출입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

어렵사리 들어간 역사 건물과 시설은 비교적 말끔했다. 비록 지난 11년간 단 한 번도 승객을 태우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주기적으로 관리해서다. 그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세월의 더께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철로는 붉은 녹이 가득 슬어 있었고, 제진역을 알리는 파란색 이정표지판도 세월의 흐름 속에 갈라지고 금이 간 모습이다. 역사 내부도 매한가지. 매표소 위에 걸린 열차 시간표와 여객운임표는 텅 비어 있다. 출·입경 심사구역의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X-RAY)기 등도 모두 사용한 흔적조차 없다. 지난 11년이라는 세월은 그만큼 자취를 남겼다.

제진역 녹슨 철로. 2007년 5월 이후 단 한번도 열차가 운행한 적이 없다.


열차는 철로를 딱 한 번 달렸다. 2007년 5월이었다. 북쪽 금강산 역을 출발한 북한 열차였다. 우리 열차는 북한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11년간 시간이 멈췄던 역사의 시계 초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올해 4월 남북정상이 발표한 판문점 선언부터다. 이 선언에서 남북 경제협력 사업 중 하나로 꼽힌 것이 바로 동해선 연결이다. 그 중심에 바로 제진역이 있다.

동해선은 일제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했다. 함경남도 연변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192.6km에 걸쳐 있었다. 원래는 부산까지 이을 예정이었지만, 한국전쟁으로 1951년 6월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이후 남쪽에서는 1965년 속초~간성 구간에 이어 1967년 속초~양양 구간을 폐쇄하면서 길은 끊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북한의 감호역을 지나 금강산역까지 총 25.5km의 선로는 이어져 있고, 남쪽에서는 부산에서 강릉까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강릉~제진간 110km에 달하는 구간만 연결한다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와 유럽을 갈 수 있다는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상상만으로도 심장의 고동은 쿵쾅거린다.

국내 최북단 기차역사인 강원도 고성의 제진역. 2007년 5월 단 한번의 시범 운행 이후 제진역에서는 아직까지 열차는 달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운 금강산이 코앞에 ‘금강산전망대(717OP)’

금강산전망대(717OP)에서 바라본 금강산과 북녘 풍경.
제진역에서 금강산까지는 시쳇말로 ‘코앞’이다. 더구나 쉽지 않은 걸음이니, 그냥 돌아가기도 아쉽다. 민통선 내에서 금강산 주봉 능선을 맨눈으로 뚜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금강산전망대(이하 717OP)다. 고성 통일전망대보다 2km나 더 북쪽으로 올라가 있는 이곳은 과거 GP(전방 감시 초소)로 사용했던 최전방 군 관측소다. 717OP는 1992년 신축 이후 한때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군사시설로만 운영하고 있다.

고성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구불구불 이어진 언덕길을 따라가면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는 통문이다. 여기서 다시 방문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5분을 더 올라가면 육군 22사단의 최전방 관측소인 717OP에 닿는다.

이곳 전망대에서 북쪽의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다. 고성능 망원렌즈를 장착한 방송용 중계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북쪽 모습을 비춰줘서다. 왼쪽 너머로는 금강산 주봉 능선이 뚜렷이 보이고, 정면으로는 최근 이산가족 상봉단이 온정리로 이동했던 도로와 북쪽으로 이어진 철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여기에 동해 방향으로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감호’와 부처바위, 사공바위, 외추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금강산전망대(717OP)에서 바라본 금강산과 북녘 풍경.


브리핑실에서 나와 2층 야외 테라스로 이동하면 화면 속 모습을 직접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 서면 한국군과 북한군 초소가 대치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남과 북이 철책으로 갈라선 현장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흐른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풍경이다.

가장 압도적인 풍광은 금강산과 해금강이다. 해안선을 따라 시선을 돌리면 아름다운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산 1만 2000봉우리 가운데 아홉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구선봉과 ‘바다의 금강’이라는 해금강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금강산을 일반인도 볼 기회가 있다. 매년 2회 봄·가을 여행주간마다 한시적으로 개방하고 있어서다. 사전 신청 선착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

영화 ‘동주’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강원도 고성의 왕곡 마을 저수지를 가득 메운 연잎과 한옥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감은 듯한 ‘왕곡마을’

민통선 너머의 여행이 심장의 고동을 높여준다. 다행히 소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왕곡마을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왕곡마을은 강릉 최씨와 강릉 함씨의 집성촌이다. 50여 가구가 한옥과 초가집을 짓고 사는 전통 마을이다. 한국전쟁의 와중에도, 고성 산불의 재난에도 제 모습을 온전히 지켜냈다. 마을은 시간의 태엽을 30~40년 전으로 되감은 듯하다.

백두대간 동쪽에 이런 전통마을은 경북 영덕의 괴시리 마을과 이곳, 이렇게 두 곳뿐이다. 영덕의 영해면 괴시리가 너른 영해 들을 끼고 있는 대갓집들이 모여 있다면, 이곳은 소박한 한옥과 초가집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솟을대문과 운치 있는 누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소박해서 더 정감이 넘친다. 마을 어귀에 차를 대놓고 돌담길을 따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보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깨끗하게 헹궈지는 기분이다.

영화 ‘동주’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강원도 고성의 왕곡 마을의 한옥. 왕곡마을은 조선후기 세워진 ‘북방식 전통한옥과 초가집’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밀집,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외부와 차단된 골짜기 형태의 분지를 이루고 있어 한국전쟁 당시에도 대부분의 집들이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왕곡마을은 지금 무르익은 가을 풍경이 한가득이다. 마을 어귀부터 어른 키 높이만큼 자란 코스모스들이 군데군데 꽃밭을 이루고 있다. 황토로 이겨 바른 돌담 아래는 쑥부쟁이도 무더기 피어 있다. 작은 개울이 흘러내리는 마을 안쪽으로 소박한 한옥과 초가집들이 맞대고 있는 처마 사이마다 붉은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누렇게 익은 논들 사이로 경운기가 바삐 오가는 모습이며, 벼베기에 한창이던 마을 주민은 둥글게 모여앉아 새참을 나누는 모습도 정겨웠다.

왕곡마을에서는 늦가을부터 철새가 날아드는 송지호가 지척이다. 아직 철새가 당도하려면 멀었지만, 지금도 송지호에선 갈대꽃이 솜털처럼 피어난 호반에서 오리 떼들이 거울 같은 물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왕곡마을을 다 둘러본 뒤에 마을이 끼고 있는 송지호 둘레로 조성한 2시간짜리 호반 길을 이어붙인다면 더할 나위 없는 가을의 여정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고추를 말리고 있는 왕곡마을의 촌부


◇여행메모

△가는길= 강원 고성의 동해안 최북단 717 OP(금강산 전망대)는 군부대의 협조로 봄·가을 여행주간에 한해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아 하루 40명씩 한시적으로 출입을 허락한다. 10월 20일부터 11월 4일까지 열리는 올해 가을 여행주간에도 같은 방식으로 출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0월에는 기존 고성 통일전망대 옆에다 새로 짓고 있는 해돋이통일전망타워도 완공된다. 이 기간에는 강원도는 ‘DMZ 투어 위크’를 운영한다. 명사와 함께하는 DMZ 지역 5개 군 역사·문화·생태체험 이야기 투어를 진행한다. 이와 함께 코레일과도 강릉선 KTX, 경춘선 ITX, DMZ 평화열차 등 강원권 철도를 활용한 다양한 여행상품 개발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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