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株소설]인플레를 붙잡아뒀던 '아마존 효과'가 걷힌다고?

어도비 조사, 美 온라인 상품 가격 15개월 연속 상승
'공급 차질, 낮은 재고, 노동비용 증가가 상승 이끌 것'
떠난 노동자 안 돌아와 임금↑…"경기 좋을 땐 꿈 좇아"
80년대 후 '가격 싸면 독점 아니다' 시카고학파 사상 퍼져
점유율 지금보다 낮을 때도 FAANG은 가격↓
  • 등록 2021-10-25 오전 3:30:00

    수정 2021-10-25 오전 3:30:00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안경은 왜 이렇게 비쌀까요. 디자인, 첨단 소재 비용이 모두 포함돼 있다고 해도 좀 과하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올 초 바이든 대통령이 임명한 팀 우(Tim Wu) 국가경제위원회 대통령 기술·경쟁정책 특별보좌관은 그 이유를 ‘독점’에서 찾습니다.
어벤져스 : 인피니티 예고편 캡쳐. (출처=마블 유튜브)
그는 저서 빅니스(Bigness)에서 ‘고품질 안경테는 4~8달러면 만들 수 있고 최상품 원가도 15달러인데 선글라스는 200달러 이상을 주고 구매하는 게 일방적이며, 때로 안경류 원가는 5000%를 초과하기도 한다’며 ‘이탈리아 안경회사인 룩소티카(Luxottica)는 1990년 보그 아이웨어를 사들인 이래 레이밴, 선글라스 헛, 할인 소매점 렌즈크래프터스 등 일련의 미국계 회사와 시드니의 OPSM, 콜 내셔널 등을 인수했다’고 전합니다. 안경 공룡 기업의 독점적 지위 때문에 제조비가 내려가는데도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것입니다. 독점은 확실한 인플레이션 요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엔 룩소티카와 비교도 안 되는 거대 독점 기업군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 때문에 인플레가 안 일어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FAANG으로 불리는 미국의 IT공룡, 빅테크 기업 얘깁니다. ‘아마존 효과’란 단어에 응축돼 있는 이 현상은 ‘거대(Bigness)할수록 싼 제품을 만들 수 있다’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합니다. 팀 우 보좌관은 ‘독점 역사상 가장 큰 문제가 미국의 공룡 IT’라며 이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전보다 싸게 음악도 듣고 해외 직구도 하게 해줬는데, 왜 문제 삼는 것일까요.

월마트가 임금 올리는데, 아마존도 올려야지

아마존 효과가 전과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올해 금융시장의 화두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일시적(transitory) 인플레이션’일 텐데, 이와 관련해서 아마존 효과는 매우 중요합니다. 마진 비용을 대폭 줄인 온라인 세상이 생긴 뒤부터 인플레가 생각보다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 효과가 약해진다면, 다시 인플레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도비 디지털 인사이츠 조사를 인용한 KB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미국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가격은 15개월 연속 상승했습니다. 8월 온라인 상품 지수는 전년 대비 3.1% 올랐고 전월 대비 0.1% 상승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온라인 상품 가격은 연간 3.9% 하락했지만, 하락 추세가 반전된 이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도비는 ‘공급 차질과 낮은 재고가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지만, 노동비용 증가가 앞으로도 가격 상승세를 이끌 것’이라며 ‘노동비용 증가가 앞으로도 가격 상승세를 이끌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과거 전자상거래 시장의 비중이 낮았을 때는 전자상거래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고도 진단했습니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운송 차질로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가격을 올린 것이지, 가격 인상이 꼭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가격 전략이 바뀌어서인 것 같진 않다”고 평가했습니다. 아마존이 이제 시장을 먹을 만큼 먹었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은 상태는 아닐 가능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지겹도록 듣고 있는 공급 병목 현상을 제외하면 노동비용 증가가 주목됩니다. 미국은 요즘 집단면역에 가까워짐에도 일터로 돌아오지 않는 노동자들 때문에 임금 상승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놓은 돈이 많아서, 애들이 학교에 가는 시즌이기 때문에 등의 이유가 다라면, 시간이 좀 흘러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복귀할 것이고 임금 상승 압력도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현상이 구조적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어쨌든 최근 오르고 있는 임금 인상 압박에 아마존도 어쩔 도리 없이 월급을 올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50개주 중 절반 가까운 주에서 사람을 많이 뽑는 기업이 어디냐 하면 월마트다”라며 “지금 미국의 임금 상승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은 (임금 수준이) 가장 밑단인 소매업으로, 월마트는 임금 올리는 것을 주도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경쟁사인 아마존도 따라서 임금을 올려야 하는 구조”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아마존 효과가 사라지느냐는 임금 상승이 지속되느냐, 코로나로 떠난 노동자들이 돌아올 것이냐에 달린 것입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이와 관련 흥미로운 관측을 내놓았습니다. 실현된다면 아마존 효과 약화 요인입니다. 이 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젊은 층(24세 이하)은 경기가 좋을수록 오히려 노동시장참여가 하락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었다”라며 “그도 그럴 것이, 경기가 좋을 때 젊은 시절 자신의 꿈도 펼쳐보고 대학도 가는 것이지, 경기가 어려우면 오히려 꿈을 접거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일찍 노동시장에 뛰어들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장년층(55세 이상)은 복지정책이 강화되고 자산가격이 상승할수록 조기에 노동시장을 떠나는 경향을 보인다”라며 “중간층(25~54세)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들만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기대대로 경기가 좋을 때 노동시장 참여율을 높이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들은 옛날 방식의 사악한 독점기업이 아니다. 달콤한 맛 달콤한 맛, 밝은 빛, 선의를 퍼뜨리는 데 헌신하고 있었다’

다만 아마존 효과의 소멸을 얘기하는 데 있어, 임금 상승은 구조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임금 상승이 아마존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임금 상승 과정의 한 가지 사례로 봐야 한다는 얘깁니다. 중요한 건 어도비에서 지적했듯 시장 점유율 문제, 즉 독점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아직까진 월마트도 있고, 또 미국 외 다른 지역 출신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있는 상황이라 빅테크 기업들이 ‘이만하면 가격을 올려도 되겠어’란 생각을 하기 이르다고 봐야 할까요. 22일 기준 FAANG의 총 시가총액은 약 9조4000억달러입니다. 작년 한국의 GDP가 1조6000억달러입니다. 이들의 준독점적 위치를 감안하면 충분히 소비자 가격에 비용을 전가시킬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당장 넷플릭스가 구독료를 몇 천원 올린다고 해서 해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퇴근 후 뭘 볼까 하며 채널을 돌리는 일은 점점 옛일이 돼가고 있습니다.
(출처=아마존)
서두에 말씀드렸던 팀 우 보좌관은 빅니스에서 애초부터 문제는 가격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그들은 옛날 방식의 사악한 독점기업이 아니었다. 새로운 회사들은 모든 인간에게 달콤한 맛, 밝은 빛, 선의를 퍼뜨리는 데 헌신하고 있었다. 정보에 접근하고(구글), 싼값에 책을 사고(아마존) 전 세계적 공동체를 만든다(페이스북), 이에 대한 비용으로 비싼 값을 치르라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비용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중략)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기업은 비즈니스라기보다 자선단체에 가까워 보였다. 당신이라면 적십자를 고소하겠는가?’라고 서술합니다. 이미 준독점 위치에 올랐을 시점부터 가격 인상이 없었던 겁니다.

팀 우 보좌관은 역설적으로 이는 이들의 독점적 위치를 견고하게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독점 기업이 독재정권에 경제적 수혈을 하는 탓에, 나치와 세계대전이란 재앙까지 이어졌습니다. 경험을 통해 배운 인류는 ‘솜씨 좋은 정원사’에 비유되는 질서자유주의를 통해 삐져나온 독점 기업의 싹을 잘 잘라냅니다. 1960~1980년대 당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장악하고 있던 IBM은 미국 법무부가 반트러스트 소송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에, 최초로 열일곱 개의 응용프로그램을 대여용으로 분리해 내놓습니다. 이날이 1969년 6월 23일인데, 이를 소프트웨어 산업계에선 ‘독립기념일’로 부른다고도 합니다. 1981년 IBM이 PC 시장에 진입했을 땐 더 큰 파격성을 보입니다. 하드 드라이브는 시게이트, 프린터는 엡손, 프로세서는 인텔 제품을 쓴 것입니다. OS는 마이크로소프트 것을 사용합니다. 당시 빌 게이츠는 스물 다섯살로 대학교 졸업도 하기 전입니다. 공룡기업 IBM을 압박한 덕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세상에 나온 셈입니다. 비슷한 루트로 당시 최대 공룡인 AT&T은 작아졌고, AOL과 컴퓨서브가 탄생했습니다.
IBM PC 5150. (출처=위키미디어)
반독점과 성장은 잘 가는 가 싶더니 80년대쯤 들어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시카고학파 경제학자 아론 디렉터가 한 아이디어를 내고 로보트 보크가 이를 정돈하고 세상에 알리면서 입니다. ‘디렉터는 미국의 법이 소비자 복지 측면에서 비생산적이라고 공격했다. 소비자의 경제 전망이 강화되었는지는 측정 가능한 방식으로 측정해야 하며 그것은 바로 보다 낮은 가격이라는 것이다’라고 팀 우 보좌관은 설명합니다. 디렉터의 생각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이는 훗날 법이 어떤 기업의 독점 여부를 판단할 때 지나치게 ‘그래서 제품 가격이 올랐어?’만 따지게 했습니다. FAANG이 반독점법에 저촉되려야 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가격이 오히려 싸졌는데 독점일 수가 없습니다.

팀 우 보좌관은 ‘소비자의 복지라는 기준을 널리 채택하면서 (중략) 단지 한 세대가 지난 후 우리는 상업과 금융의 세계화에 힘입어 경쟁과 경제적 자유의 이상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중략)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 기업 집중의 저주가 만들어낸 현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빅니스의 원제가 바로 ‘거대함의 저주(The Curse of Bigness)’입니다. 싸게 또는 공짜로 쓸 수 있다고 능사가 아니란 것입니다. 제2의 FAANG을 만들 수 없으며, 정경유착 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팀 우 보좌관을 올 3월 6일 임명했습니다. 그 뒤 7월 ‘아마존 저격수’ 리나 칸이 미국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리나 칸은 4년 전 예일대 법학대학원 재학 시 ‘빅테크 아마존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반독점을 재해석해 이들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28세였습니다. 같은 달 법무부 반독점국장엔 ‘구글의 적’으로 유명한 조나단 캔터가 임명됐습니다. 반독점 3인방의 완성입니다. 아마존 효과로 반독점법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아마존입니다. 아마존 효과, 적어도 조 바이든 정부에선 안 사라지지 않을까요.
(좌)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장과 팀 우 백악관 특별보좌관. (출처=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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