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당신의 사랑은 어디서 꽃피었나요

장소의 연인들
이광호|178쪽|문학과지성사
"연인들은 장소를 발명한다"
  • 등록 2023-02-01 오전 12:20:00

    수정 2023-02-01 오전 12:20:0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발코니, 계단, 지하실, 골목, 서점, 욕조, 벤치. 연인들의 공간에 주목한 책이다.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어떤 공간이 연인들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건의 개입 때문”이라며 연인들의 시간이 장소를 어떻게 발명하고 변화시키는지 탐색해간다.

아무리 사소하고 우연한 장소일지라도 연인들의 시간을 통해 ‘개별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연인들이야말로 장소를 발명한다는 게 저자의 명징한 메시지이다. 연인들의 장소에서 ‘사랑-하다’는 ‘장소-하다’와 동의어인 동시에 연인들에게 장소가 명사가 아닌 동사인 이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속 ‘발코니’를 보자. 저자에 따르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한 익숙한 사랑의 서사에서 발코니가 로맨틱한 느낌을 자아내는 것은, 그곳이 은밀한 경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원수 집안의 담장을 넘어야만 만날 수 있는 연인의 독백을 엿듣는 곳”이자, “그 독백에 응답하고 구애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인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첫사랑’에서 나오는 벤치는 또 어떤가. 벤치는 길 위의 연인들을 나란히 쉴 수 있게 만든다. ‘앞’의 세계는 시선의 대상이 되는 곳이지만, ‘옆’의 세계는 몸을 나란하게 위치시킨다.

리처드 플래너건의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속 사랑은 서점에서 일어난다. 서점은 “바깥 세계의 번잡함과 계산들을 피해 숨어드는 동굴 같은 곳”으로 “진열된 책들 안에 들어 있는 문장과 사유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계시적인 느낌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온갖 텍스트 속 ‘장소’를 둘러싼 사유의 조각들 틈 익명의 ‘나’와 ‘그’의 시선을 비춰 일종의 연시(戀詩·연애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침대는 뗏목이 되고, 욕조는 우주선이 되며, 계단은 방이 되는 식이다. 책은 문학과지성사가 새로 선보이는 ‘채석장 그라운드’ 시리즈 가운데 한 편이다. 정치·사회·예술 등 다양한 국내 필자들의 사유를 담은 인문 기획이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꼼짝 마
  • 우승의 짜릿함
  • 돌발 상황
  • 2억 괴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