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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지방자치단체의 ‘곳간’을 차지하기 위해 은행 간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그동안 서울·수도권 지자체 금고는 시중은행이, 기타 지방 지자체 금고는 해당 지역에 기반을 둔 NH농협은행과 지방은행들이 주로 맡으며 양분돼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중은행들이 지방 영토 확장에 나서면서 ‘지자체 금고’ 유치전이 뜨겁다. 시중은행 대 농협·지방은행 신경전 뿐만 아니라 시중은행들 간 경쟁도 치열하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전국 243개 지자체 금고(일반회계 기준) 중 농협은행이 165개(68%)로 가장 많은 금고를 가지고 있다. 신한·KB국민은행·KEB하나은행·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43개(18%), 지방은행은 35개(14%) 순이다.
과거에는 수의계약이 많았고 평가 항목도 지역 네트워크와 친밀성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해당 지역 농협은행과 지방은행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다.
특히 금고 쟁탈전의 도화선은 서울시가 됐다는 게 업계 내 일반적 시각이다. 지난 1915년부터 100년 넘게 서울시 금고를 도맡아오던 우리은행은 지난해 신한은행에 서울시 금고지기 자리를 내줬다. 신한은행이 입찰심사에서 3000억원대의 출연금을 제시해 1000억원대를 써낸 우리은행을 제쳤기 때문. 이로써 신한은행은 올해부터 약 32조원 규모의 서울시 예산을 관리하게 됐고, 우리은행은 서울시 2금고로 밀려났다.
최근에는 농협은행이 30여년 간 맡아온 광주시 광산구 금고가 출연금을 3배 제시한 KB국민은행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농협은행은 심의위원회가 열리기 전 심의위원 명단이 유출됐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전남 순천시에서는 광주은행이 최근 시 금고로 선정된 KEB하나은행을 상대로 계약 무효 등 확인소송을 진행했지만 패소했다.
특히 올해 부산시와 대구시 등 광역 및 기초 지자체 49곳의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지자체 금고를 둘러싼 쟁탈전이 예고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적게는 수백억원부터 많게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지역 세입 및 세출 등 ‘큰돈’을 유치하는 실적을 확보할 수 있을뿐 아니라 브랜드 홍보 효과 등으로 지역 주민과 지방기업 고객 유치에도 도움이 돼 출혈경쟁이 불가피하다”며 “지자체 입장에서도 은행들이 제시하는 협력사업비가 세외수입으로 확보되기 때문에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은행들의 ‘출혈경쟁’을 막기 위해 지자체 금고 선정 때 협력사업비 배점을 낮추고 금리 배점은 높이는 한편 입찰에 참여한 은행의 순위와 총점도 모두 공개하는 ‘지자체 금고지정 기준(예규)’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