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1019억원짜리 작가를 대하는 자세

  • 등록 2019-04-01 오전 12:12:00

    수정 2019-04-01 오후 7:15:34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미술계가 떠들썩하다. 한동안 시달렸던 소음과는 좀 다르다. 위작 시비도 아니고 비자금 조성도 아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영국 테이트미술관과 협업해 연 ‘데이비드 호크니 전’ 얘기다. 이런 화제는 정말 ‘모처럼’이 아닌가. 이대로라면 온전히 이름값 하는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또 하나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떠들썩’의 중심에 선 이는 영국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2). ‘세계서 가장 비싼’이란 타이틀을 가진 그다. 그 기록도 불과 몇 달 전인 지난해 11월 세운 따끈한 것이니. 1972년에 그린 ‘예술가의 초상’ 혹은 ‘수영장의 두 사람’이라 불리는 작품이 미국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9030만달러(약 1019억 6000만원)에 덜컥 팔린 것이다. ‘생존작가 중 최고가’를 다시 쓴 순간이었다. 이전까지 기록은 2013년 같은 경매서 5840만달러(약 658억 6000만원)에 팔린 미국작가 제프 쿤스의 조형물 ‘풍선 개’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분위기가 어땠겠나. 5년 만에 깬 기록도 특별한데 3000만달러 이상 경매가를 높여놨으니.

이 자체로 말이다. 1등 좋아하는 한국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단 소리다. 왜 아니겠나. 한국에선 생존작가는커녕 타계한 작가까지 모두 포함해도 1000억원은 커녕 100억원대 근처도 가질 못했으니까. 개막 이후 사흘간 1만 명이 봤다는 얘기가 돌고, 이런 정보도 숱하게 떠다닌다. ‘데이비드 호크니 전 싸게 보는 방법.’

돈이 작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천만에. 돈이 한다. 그림 한 점에 1019억원이란 정보가 빠졌다면 이 작가를 설명할 대형변수 하나가 사라진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개인의 취향이 돼버릴 거고, 그게 아니라면 전시장 입장료 역시 덩달아 비싸지지 못했을 거고.

말이 난 김에 관람료 얘기 좀 하고 넘어가자. 회화·드로잉·판화 등 133점을 건 이번 호크니 전의 관람료는 성인기준 1만 5000원. 서울시립미술관이 생긴 이래 가장 비싼 가격이다. 전국 시립미술관의 기획전이 평균 1만원을 한참 못 넘기니 대담한 책정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얼마가 들었길래. 그런데 알려줄 수가 없단다.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알차게 꾸렸을 텐데도 그냥 그들만의 비밀로 하겠다는 거다.

걸리적거리는 부분은 더 있다. 화가와 병행해 사진작가로도 소개할 만큼 호크니는 한때 포토콜라주에 몰두했더랬다. 그런데 ‘회고전 규모’란 홍보가 무색하게 전시에는 1980∼90년대의 그 지점이 빠져 있는 거다. 여기에 마치 한국 단독전처럼 띄웠지만 결국 이후 베이징·함부르크로 향할 순회전이었다든가, 호크니의 작품을 가장 많이 가졌다지만 테이트미술관 한 곳의 소장품을 집중적으로 옮겨놨다는 것까지, 섭섭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정적으론 ‘1019억원짜리 작가를 대하는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를 굳이 일깨워 준 점. 미술관 작품 귀한 걸 모르는 사람이야 있겠나. 그럼에도 그 작품 때문에 정작 사람이 무시당하는 일은 왕왕 겪어왔던 터. 가령 무조건 입장 시켜 떼를 지어 상대의 뒤통수만 보고 이동하게 하거나, 작품 보호한다고 사람을 그보다 못한 짐짝 취급하는 등. 블록버스터급 전시라면 떠오르는 아픈 기억이 아닌가. 조짐은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불거졌다. 이미 두 주 전 공지한 내용에는 전혀 없던 사진촬영가이드라인을 당일 갑자기 꺼내놨다든지, 개막식을 임박해 잡아두곤 취재도 안 끝난 기자를 내몰다시피 했다든지. ‘왜’에 관한 해명은 끝내 듣지 못했으니, 결국 행정절차상의 실수·잘못을 서울시민인 ‘나’의 이해와 양해가 덮어줘야 한다고 믿었나 본데.

글쎄. 이제 열흘 남짓한 분위기로 서울시립미술관 역시 ‘모처럼의 성공’에 한껏 들떠 있을지 모르겠다. 호크니나 전시기획을 폄하할 작정이겠나. 다만 그 안에선 무엇을 두고 성공이라고 말할 건지. 오로지 다녀간 관람객 수만이 그 잣대가 된다면 정말 곤란하지 않겠나.

‘세계서 가장 비싼 생존작가’란 타이틀을 가진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1967)과 이를 바라보는 관람객.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그림은 호크니의 이른바 ‘수영장시리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란 서울전에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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