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커스]그리스의 비극과 불행한 행복주택

  • 등록 2015-07-05 오전 6:00:00

    수정 2015-07-05 오전 10:56:07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그리스 사람이 정말 게으를까요? 최근 뜨거운 감자인 그리스의 채무 불이행(디폴트) 얘기입니다. 그리스 정부가 IMF(국제통화기금) 빚을 갚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일 텐데요. ‘화폐만 합친 반쪽짜리 공동체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에 가입해 2002년부터 독일·프랑스 등 18개국과 함께 유로화를 사용하는데요. 문제는 여러 나라가 같은 화폐를 쓰자 지역 간 불균형이 커졌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사람들이 너도나도 성능 좋은 독일 자동차를 사려 한다면 독일 돈을 찾는 수요가 많아지겠죠. 그럼 독일 화폐 가치가 오르고 그리스 화폐 가치는 떨어질 겁니다. 예전에 그리스 돈 1드라크마와 독일 돈 1마르크를 교환했다면, 이제는 2드라크마는 줘야 1마르크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인데요. 이렇게 되면 그리스에서 독일 찻값이 2배로 오르고 구매도 확 줄 겁니다.

하지만 같은 돈을 쓰는 유로존에서는 이처럼 무역의 균형을 잡아줄 환율이라는 추가 없었고요. 이 때문에 독일처럼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나라 금고에는 돈이 넘치고 그리스 같은 나라는 빚을 잔뜩 짊어져야 했습니다. 자국 돈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없으니까요.

유로존에 중앙정부라는 재정 정책을 틀어쥔 컨트롤타워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정부의 역할이 뭔가요? 같은 화폐 공동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지역 간, 집단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입니다. 그러나 유로존은 화폐만 합친 반쪽짜리 공동체였고요. 유로존에서 가장 부유한 독일 정부도 그리스의 개혁만 요구할 뿐 뒷짐을 졌죠. 독일 사람이 그리스인은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하고, 그리스 사람은 독일인이 탐욕스럽다고 불만을 품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기우뚱한 경제의 균형을 맞추려는 책임있는 주체의 부재가 있습니다.

왜 뜬금없이 그리스 얘기냐고요?

불평등 부르는 ‘행복주택’ 논란

이번 주 부동산시장을 달군 이슈는 ‘행복주택’인데요. 청년층 주거복지를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이 사업이 오히려 불평등을 부채질한다는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지난달 30일 강동구 강일지구 등 서울 시내 행복주택 4개 단지, 847가구의 입주자 모집 공고를 냈습니다. 행복주택은 전체 가구의 80%를 대학생·사회초년생·신혼부부에게 시세의 68~80% 수준에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인데요. 대통령 공약 사업으로, 추진 2년여 만에 첫 입주자를 모집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날 민달팽이유니온 등 15개 청년 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행복주택 입주 기준 중 취업 요건을 없애고 임대료도 낮춰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먼저 까다로운 입주 자격이 청년 간 형평성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행복주택은 대학생과 건강보험 5년 미만 가입자인 사회초년생, 신혼부부가 입주 대상인데요. 따라서 취업 준비생과 대학원생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올해 5월 기준으로 15~29세 사이 청년층 고용률(전체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이 41.7%인데요.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미취업·구직자가 마땅히 입주 신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비싼 임대료도 논란거리입니다. 민달팽이유니온에 따르면 이번에 공급하는 행복주택의 단위 면적당 임대료는 사회초년생 기준 1㎡당 평균 1만 4100원으로, 서울시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인 이웃기웃(1㎡당 6700원)보다 2배 넘게 비쌉니다. 대학생 임대료도 서울시 대학생 희망하우징(1㎡당 8200원)보다 62.5% 높은 1㎡당 평균 1만 3325원에 달합니다. 최소 보증금 2000만원(송파 삼전지구는 500만원)이 없다면 대출을 받으라는 국토부 권고도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이 큰 청년들의 빈축을 샀지요.

무늬만 보편성 띤 ‘행복주택’

정부는 행복주택이 보편적 복지 정책 사업인 만큼 입주 문턱을 최대한 낮췄고, 이 때문에 임대료가 영구·국민임대 같은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 주택보다 비싼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정작 저소득 청년은 혜택을 못 받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 과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인데요. 보편적 복지라지만 모든 청년이 행복주택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가난한 사람에게 걷은 세금을 중산층에게 몰아줘 계층 간 불균형이 심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더 생각해 볼 문제도 있습니다. 사실 행복주택은 그 출발부터가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한 사업이죠. 따라서 한 사회의 경제적 불균형을 조정해야 할 정부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예컨대 청년층 전체를 하나의 추상적인 약자 집단으로 뭉뚱그려 접근한 것부터가 그렇군요.

지난달 한림대 고령사회연구소 세대공생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요. 우리나라의 노령층 빈곤율은 52.6%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9개국 중 가장 높습니다. 29개국 평균인 19.1%의 3배 수준인데요. 노령층의 1인당 가처분소득이 전체 근로 연령층 1인당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54.7%로 29개국 중 꼴찌였습니다. 세대 간 자원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폐지 모아 고물상에 파는 노인이 낸 세금을 중형차 타는 대기업 신입사원의 임대료를 보조하는 데 쓰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요.

공무원 집단을 보면 늘 그 능력에 감탄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요구 사항을 척척 해내니까요. 그러나 어떤 공약이나 정책으로 사회의 불균형을 심해질 것이라 우려된다면 한 번쯤 직언하는 용기를 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행복주택 입주자가 취업 준비생을 보며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하고, 취업 준비생이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은 행복주택 입주자에게 욕심이 지나치다고 불만을 품는다면,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부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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