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김주연 "자폐증 편견 벗으니 템플 그랜딘이 보였어요"

[연극 '템플' 김주연 인터뷰]
인터넷·유튜브 뒤져가며 자폐증 연구
자폐증 편견과 오해 불식에 도움 되길
9월 3~ 2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 등록 2021-08-31 오전 4:35:01

    수정 2021-08-31 오전 4:35:01

배우 김주연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연극 ‘템플’이 자폐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됐으면 해요.”

‘템플’의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주연은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연기를 위해 수 개월간 자폐증을 공부하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 갖고 있던 자폐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고, 제대로 템플 그랜딘을 연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이 같이 밝혔다.

‘템플’은 자폐인임에도 세계적인 동물학자가 된 템플 그랜딘(76)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연극이다. 2019년 고양문화재단에서 시작해 지난해 ‘웰컴대학로-웰컴씨어터’를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주인공 템플 그랜딘은 두 살 때 보호시설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진단받은 자폐아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일생의 스승인 칼록 선생님을 만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물학자로 성장했다.

김주연은 ‘템플 그랜딘’을 연기하기 위해 그가 쓴 ‘어느 자폐인 이야기’를 수차례 읽고, 인터넷과 유튜브를 밤새 뒤져가며 자폐증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템플의 강의 영상, 해외 다큐멘터리, 자폐 아이를 둔 부모님들이 올린 영상도 다 찾아봤다”고 설명했다.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 ‘증인’의 김향기 등 자폐인을 연기한 선후배 연기자들의 영화도 돌려봤다.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활용하는 신체 연극인 ‘템플’의 매력을 묻자 “배우 8명의 합”이라며 ‘서로에 대한 애정이 ‘템플’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고 답했다. 템플의 ‘뽀글이 머리’를 위해 공연 시작 2시간 전에 극장에 출근해 고대기부터 찾는다는 그는 “몸이 힘들기는 해도 정말 가치 있는 작품이기에 출근길이 너무 신난다”며 환하게 웃었다. ‘템플’은 오는 9월 3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다음은 김주연과의 일문일답이다.

배우 김주연
-뮤지컬 ‘데미안’, ‘줄리앤폴’ 등 기존 출연작과는 너무 달랐는데, 이 작품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심새인 연출이 ‘뜨거운 여름’ 작품을 같이 하던 중에 “템플 그렌딘을 주제로 한 작품을 쓰고 있는데, 함께 하자”고 제안해 줬어요. 영화 ‘템플 그랜딘’을 너무 감명 깊게 봤기에 이 작품은 무조건 해야 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본은 커녕, 정말 아무 것도 없이 무(無)에서 시작했어요. 난감하긴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자폐증에 대해 정말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어요.

-심새인 연출이 왜 김주연 배우에게 템플 역을 제안했다고 하던가.

△저에게 재미있는 지점이 있대요. 제가 3남매 중 막내인데, 하라는 대로 안하고, 차분하지 않고, 성격이 왈가닥인 편인데요. 정말 창의적인 작업을 시작할 건데, 저랑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대요.(웃음)

-굉장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캐릭터를 어떻게 연구했나.

△템플이 쓴 ‘어느 자폐인 이야기’를 몇 번이나 읽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압박기를 만들기까지 템플이 자신의 입장에서 느꼈던 것들을 서술한 책인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도 자폐증에 대해 계속 연구했어요. 템플이 실제로 강의한 영상, 자폐증을 다룬 해외 다큐멘터리, 자폐 아이를 둔 부모들이 올린 영상과 조언들도 하나하나 다 찾아봤어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 ‘증인’의 김향기 연기도 참고를 했구요.

연극 ‘템플’의 공연 장면(사진=고양문화재단)
-자폐증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템플을 연기하면서 제 자신도 자폐증을 앓는 사람들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 주변에 자폐인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공연에 앞서 수 개월간 자폐증을 공부하고 나서는 달라졌어요. 제 스스로 자폐증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나니 제대로 연기할 수 있게 됐어요. 이 작품이 자폐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

-기억에 남는 공연 회차가 있나.

△초연 때 특수학교 학생들이 선생님, 학부모님들과 같이 단체 관람을 온 적 있었어요. 아이들이 떠들어서 평소보다 공연장이 시끄러웠어요.(웃음) 그날 어느 공연보다도 관객들의 마음에 닿으려고 열심히 연기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한 학부모님이 “앞으로도 좋은 공연 많이 해달라”고 하셨는데 정말 뿌듯했어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데 대한 부담은 없었나.

△공연을 준비하면서 ‘템플 그랜딘이 우리 공연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하는 궁금증이 든 적 있어요. 우리(배우)들끼리는 농담으로 ‘빨리 코로나19가 끝나야 템플 그랜딘에게 공연 보러 오라고 티켓 줄 텐데….’라고 얘기해요.(웃음) 아마 템플 그랜딘은 편견을 이겨낸 사람이고, 열려 있는 사람이라서 우리 공연도 좋게 봤을 것 같아요. 실존 인물이라서 가진 부담보다는, 그가 가진 따뜻한 마음을 왜곡되지 않게 표현하고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훨씬 더 컸던 것 같아요.

연극 ‘템플’ 공연 장면(사진=고양문화재단)
-몸 쓰는 것도 잘 하던데.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공연이 대체로 몸을 많이 써요. 그런데 저는 몸 쓰는 것은 정말 못 해요. ‘템플’에서도 제가 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만 할 수 있도록 다른 배우들이 배려해줘서 티가 안 나는 거예요. 배우에 맞춰서 공연할 수 있는 게 창작의 묘미 중 하나죠.(웃음)

-움직임이 많은 신체 연극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나.

△힘들기는 해도 가치가 있는 공연이라고 생각해서 매일매일 공연하러 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났어요. 소리를 많이 질러야 해서 걱정을 좀 했는데, 목이 워낙 튼튼해서 별 탈 없이 끝났던 것 같아요. 초연 때 연습하다가 갈비뼈에 금이 간 적이 있었어요. 공연할 때마다 아프길래 갑자기 근육을 많이 써서 그런가 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병원 가서 보니 금이 갔다고 하더라구요. 따로 치료받지 않고 그냥 나았어요. 사실 제일 힘든 건 뽀글이 머리 하는 거예요.(웃음)

-머리를 매일 하나?

△그럼요. 머리 때문에 극장에 제가 제일 먼저 와야 해요.(웃음) 빨리 올 땐 두 시간 전쯤에 극장 도착해서 고대기로 머리부터 말아요. 실핀도 잔뜩 꼽고, 스프레이도 막 뿌려서 힘들게 만드는 머리예요.

배우 김주연
-관객들이 남기는 리뷰를 보나.

△솔직하게 말해서 감당할 수 있는 것만 봐요. 관객들의 평가가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저를 흔들기도 하거든요. 저는 연기할 때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믿음이 무너지면 안 돼요.

-믿음이 무너진 적이 있었나.

△고칠 수 없는 저만의 음색, 말투 등에 대한 얘기로 무대에 서기 두렵고 무서웠던 적 있어요. 선배들한테 고민 상담을 하기도 했구요. 지금은 제가 감당할 수 잇는 것만 받아들이려 해요. 저만의 독특함이 더 아름답게 표현될 때도 많다고 생각해요.

-힘들었을 텐데, 잘 극복한 것 같다.

△좋은 연출가님들을 많이 만나서 제가 가진 강점들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연극 ‘관부연락선’을 하면서 무대에서 한 꺼풀 벗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에서 정말 자유로움을 느꼈거든요. ‘템플’만큼이나 스스로 믿음을 갖고 했던 공연이예요. ‘윤심덕’이란 인물이 가진 기존의 이미지와 다르게 연기하려 했는데, 관객들이 받아들여주는 모습을 보고 확신을 갖게 됐죠.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인가.

△왈가닥이라 해야 하나…. 조신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단 부딪혀보고 나중에 생각하는 것들이 많아요.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가면서 차분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웃음)

-그런 성격이 연기에 도움이 되나.

△전 그렇다고 생각해요. 뭔가 남들 눈치 안보고 편하게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처음으로 더블캐스팅인데, 박희정 배우의 ‘템플’은 어떤가.

△계속 원캐스트로 해서 다른 사람이 템플을 하면 어떨지 저도 늘 궁금했어요. (희정) 언니가 저랑 외모나 성격이 비슷한데, 확실히 연기를 할 땐 언니만의 색깔이 있는 것 같아요. 특유의 맑음이 있어요. 저의 템플이 남자반 여자반 느낌이라면 언니의 템플은 무척 사랑스러워요.

연극 ‘템플’ 공연 장면(사진=고양문화재단)
-‘템플’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나 장면을 꼽는다면.

△굉장히 많은데, 지금 생각나는 건 ‘고착증(과도하게 집착하는 정신질환)은 나의 또 다른 이름이었으니까’라는 대사예요. 템플이 쓴 ‘어느 자폐인 이야기’에도 있는 글귀인데요. 집착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것일 수 있지만, 템플은 그 집착으로 압박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어요. 정말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그 대사를 내뱉을 때 무대에서 뿌듯함을 느낀답니다.

(템플 그랜딘은 자폐아 치료를 위한 ‘압박기’를 발명했다. 몸을 편안하게 해주고 안기는 기분을 느끼게 해줘 자폐아들의 긴장과 불안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기계다)

-배우 김주연 인생에서도 ‘칼록 선생님’ 같은 존재가 있었나.(템플은 마운틴 컨트리 학교에서 칼록 선생님을 만난다. 그는 템플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유일한 교육자였다. 템플은 일생의 스승 칼록 선생님을 만난 뒤로 심리적 안정을 찾았고, 세계적인 동물학자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민요를 가르쳐 주셨던 고성우 선생님이요. 그 선생님 덕분에 우리 학교가 민요 실력을 겨루는 전국 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어요. 당시 저는 남자 역할인 훈장을 맡았어요. 그 때만 해도 제가 정말 낯가림이 심했는데, 선생님 덕분에 성격이 바뀌었어요. 제가 이 길을 갈 수 있게 된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김주연 배우가 생각하는 템플의 매력은 뭔가.

△배우 8명의 합이요. 서로에 대한 애정이 ‘템플’을 아름답게 만들어줘요. 저를 제외한 7명의 배우 모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써가며 저를 도와주는 게 느껴져요. 서로 정말 끈끈해요. 누구 한 명 빠져선 안 되는 작품이에요.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 있나.

△저는 어떻게 표현할 지 깊이 고민해야 하는 배역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계속 분석하고, 연구하며 작품을 임할 때 짜릿하고 재미있어요. 밝고 유쾌한 역할도 하고 싶어요. 어쩌다보니 그 동안 슬프고 우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면 힘도 쫙 빠지고 정말 고통스러워요. 무대에서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웃음)

배우 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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