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조차 예고편이었다. 결국 6년 만인 지난주 ‘살바토르 문디’는 초대형사고를 쳤다. 뉴욕크리스티경매에 출품해 4억5030만달러(약 5000억원)에 팔리며 미술품경매사를 다시 쓴 것이다. 이제껏 최고가는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세운 1억7940만달러(약 2000억원)니 그 파장이 어떨지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림 자체로만 보면 참 드라마틱한 생애다. 프랑스·영국 왕가를 전전하며 중세를 보낸 그림은 1900년대 영국의 한 개인수집가에게 넘어가며 행방을 감췄다. 다시 출현한 건 1958년 소더비경매. 하지만 당시 화폐가치를 감안하더라도 단돈 45파운드(약 7만원)에 팔리며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다. 다들 ‘가짜’려니 해둔 거다. 반세기 뒤인 2005년 재등장한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짝퉁’ 취급을 받으며 1만달러(약 1000만원)도 안 되는 초라한 몸값을 받았다. 그러다가 운명은 2011년에 갈렸다. 런던내셔널갤러리 전시에 나서며 ‘그간 몰라봐서 미안한’ 진품으로 판정받은 거다.
그렇다고 모두가 배 아픈 이 상황에 끼얹은 찬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먹고사는 일에 1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냉소. 쿨한 척이 아니라 정말 관심이 없는 거다. 이런 면에서 예술은 상대적이다. 내가 인정하면 5000억원도 던지지만 내 관심을 못 끌면 500원도 아까운 법. 물론 예술 자체가 먹고사는 일의 전부인 이들도 있다. 최근 한 전시장서 만난 원로작가는 “내 일생을 다 바친 수고를 생각하면 그림값은 당연히 비싸야 한다”고 했다. 돈으로 따질 일이냐는 말을 에두른 거다.
동화 ‘플랜더스의 개’(1872)의 마지막 장면, 넬로가 숨을 거두기 전 봤다는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이 자꾸 생각나는 까닭이다. 정확히 말하면 루벤스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보던 주인공의 마음이다. 예술의 본령이 그거니까. “1억쯤 깎아주면 살래요?” 세상에는 이 질문에 답을 못하거나 하기 싫은 사람이 훨씬 더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