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비바 파파’와 노란 리본

  • 등록 2014-08-22 오전 6:00:00

    수정 2014-08-22 오전 6:00:00

프란치스코 교황은 길지 않은 방한 기간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위로와 교훈을 남겼다. 스스로 몸을 낮추어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로 감동을 선사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비바 파파’의 함성이 울려퍼진 것은 그러한 축복과 은총에 대한 화답이었다.

특히 세월호 사태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각별했다. 유가족들을 직접 만난 것은 물론 개인 세례를 베풀었는가 하면 팽목항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도 별도의 서신과 묵주를 전달했다. 서울을 떠날 때까지 노란 추모리본을 가슴에서 떼지 않았던 교황이다.

그의 개인적인 관심을 떠나서도 안전 문제에 관한 한 우리 국민들의 경각심은 날카롭게 다듬어진 상태다. 세월호 운영과 관련한 비리가 파헤쳐졌고, 그 소유주인 유병언 씨 일가와 돈다발을 매개로 편리를 봐주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안전의식은 과연 그만큼 높아진 것일까. 기대는 하면서도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회의적이다. 섣부른 얘기지만 내기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우리 국민들의 의식수준을 얕잡아보는 쪽에 내기를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 스스로 불편할 뿐이다.

이를테면, 긴급 출동한 소방차가 교차로에 이르렀다고 치자. 1~2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멈춰서야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방향을 틀겠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데도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들은 좀처럼 차선을 양보하지 않을 기세다. 결국 신호등이 바뀌고서야 교차로를 벗어나던 소방차를 바라보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오히려 허전하게 느껴졌던 것이 바로 며칠 전의 얘기다.

예외적인 경우라고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벌써 여러 차례나 안전사고가 일어나 아까운 생명들을 떠나보냈다. 볼일이 급한 몇몇 운전자에게만 해당되는 경우일 것이라 생각을 돌려도 마음은 그리 편하지가 않다. 그들도 분명 세월호 사태에 대해 분개했으며 다시는 그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외쳤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한국 국민들이 윤리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급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승객과 화물을 더 실으려고 안전수칙을 어겼으며, 배가 기울어지자 먼저 내뺀 승무원들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물질적인 경쟁에 함몰되어 인간성을 상실함으로써 총체적으로 나사가 풀린 데 원인이 있다는 따가운 질책이기도 했다.

그가 이번 방한에서 몸소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태도를 보여준 것도 그런 의도였을 것이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아량 없이 자기만 잘 살고 자기 입장만 관철시키겠다는 독선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어느 어두운 구석에선가는 또다른 사고의 불씨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기 마련이라는 점을 일깨우려는 가르침이었다.

국민 편익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밝히는 공직자들이 적지 않음을 우리는 걱정한다. 학교에서는 여중생들까지 서슴없이 폭력에 가담하고 있으며, 국방을 위해 징집된 젊은이들이 상급자들의 가혹행위로 신음하고 있다. 그런데도 극장가에는 명량대첩의 영웅인 충무공을 흠모한다는 관람객들이 줄을 선 모습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순신 장군이 다시 태어나 우리 사회의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된다고 해도 제풀에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도 소방차에 차선을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욱 문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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