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美연준 자산축소]①재앙인가 기우인가

잇따른 금리인상에 연준 이자부담 급증..결국 자산축소 결정
月상한액만 설정..실제 채권 매각 규모는 더 작을듯
전례 없는 실험에 불안감..유럽·일본 동참하면 시장 충격 우려
  • 등록 2017-09-29 오전 5:00:00

    수정 2017-09-29 오전 5:00:00

/AFP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미국 경제를 덮쳤을 때 미국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준금리를 제로(0)로 낮춰도 별 소용이 없었다. 이러다 일본식 장기불황이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참다못한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를 단행한다. 중앙은행인 연준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시중에 돈을 푸는 이른바 ‘양적완화(QE)’ 정책이다.

물론 연준이 진짜로 허공에 돈을 뿌린 건 아니다. 대신 시중 은행이 가지고 있는 미국 국채와 주택담보부채권을 돈을 주고 사들였다. 그러면 은행은 현금이 많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은행이 싼값에 대출을 해주고 시중에 돈이 도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연준은 총 세 차례의 양적완화를 시행했고, 이 과정에서 사들이 채권 자산이 무려 4조5000억달러 규모다. 우리 돈으로 5000조원이 넘는다. 지금껏 연준의 대차대조표에 산처럼 쌓여 있다.

워낙 양이 많은 탓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양적완화를 진두지휘한 버냉키 전 의장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자산 축소 시도는 금융 시장에서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응을 가져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닫혀 있던 빗장은 마침내 열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연준은 대차대조표의 채권 자산을 내달부터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연준이 양적완화를 시작한 지 9년 만의 일이다.

이자 지급만 年 31조원..연준은 자산 축소를 서둘렀다

4조5000억달러까지 늘어난 연방준비제도의 대차대조표 내 자산 규모 /자료=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연준이 보유한 채권 자산 4조5000억달러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5%에 달하는 규모다. 양적완화를 시작하기 전 연준의 대차대조표 자산 규모는 GDP의 6% 수준이었다. 많아도 너무 많아졌다. 연준이 마냥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규모다.

특히 연준이 미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서 자산 축소를 더 미룰 수 없게 됐다. 연준이 지급해야 하는 이자 비용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사실 연준이 양적완화를 통해 채권을 사들이면서 은행에 현금을 직접 주었던 건 아니다. 시중 은행이 중앙은행인 연준에 맡겨두는 각 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정에 숫자만 늘어나는 방식으로 채권을 사들였다. 마치 외상장부에 숫자만 달아놓는 식이다.

지급준비금은 만일의 인출 사태에 대비해 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겨 놓는 돈이다. 법으로 은행의 적정 지급준비금 규모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연준의 양적완화 때문에 은행의 지급준비금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필수 지급준비금 규모를 초과한 금액이 2조2000억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중앙은행은 은행이 맡겨 놓은 초과 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제로 금리였을 때는 걱정이 없었지만, 연준은 지난 2년간 기준금리를 총 4차례 인상했다. 이는 연준이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도 함께 올라간다는 걸 의미한다.

금리를 한번 올릴 때마다 연준의 이자비용은 55억달러씩, 약 6조원이 넘는 돈이 이자로 나갔다. 어느새 미국의 기준금리는 1.25%까지 올랐다. 연준이 연간 275억달러, 우리 돈으로 31조원에 달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준은 이자 지급에 허덕였다. 기준금리를 올리는 마당에 대차대조표 자산 축소를 미룰 명분이 없었다.

조심 또 조심..상한선만 설정해 실제 처분 더 작을듯

연방준비제도가 밝힌 보유자산 축소 계획 /자료=CAPE투자증권
자산 축소에 돌입하긴 했지만, 연준도 매우 걱정하는 눈치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연준은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러운 매각 계획을 밝혔다.

첫 3개월 동안은 한 달에 100억달러씩만 처분한다. 총 4조5000억달러 채권 자산의 450분의 1 규모다. 3개월마다 100억달러씩 규모를 늘리고 1년 뒤 매달 매각하는 채권이 500억달러씩이 되면 더 늘리지 않을 계획이다.

게다가 여기서 말하는 금액은 목표가 아닌 상한선이다. 연준의 보유 자산 축소는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고 상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달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와 주택담보부채권의 규모가 상한선에 미치지 않으면 그것만 처분하고 그만둔다는 것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예상으론 내년 9월부터 채권의 만기 상환 규모가 연준의 매각 한도 스케줄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뜩이나 소극적인 자산 축소가 실제로는 더 천천히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핌코의 리차드 클라리다 이코노미스트는 “하루에 3번 먹던 디저트를 2번만 먹게 되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디저트를 더 먹고 싶긴 하겠지만,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우려했던 것보다 연준의 자산 축소가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세계..유럽·일본 가세하면 충격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영란은행(BOE) 등 주요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상의 채권 자산 규모. 14조4000억달러 규모까지 커졌다. /자료=도이체방크, 마켓워치
그럼에도 연준의 자산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연준의 자산 축소는 양적완화의 정반대 현상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당장 시중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 연준의 분석에 따르면 그간의 양적완화로 시중금리가 1%포인트가량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연준이 자산을 축소하면서 채권을 매각하면 시중금리 상승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0.2%포인트 올라가고, 매년 0.15%포인트의 시중금리 상승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자산축소 자체가 사실상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와 비슷한 셈이다.

양적완화를 통해 흘러넘친 돈은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흘러들어 갔다. 하지만 채권이 처분되고 시중의 유동성이 연준에 흡수되면 주식시장에 악재다. 특히 신흥국으로 흘러들어온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다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미국의 양적완화가 시작된 2008년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신흥국 시장에 유입된 주식투자 자금은 7500억달러, 채권 투자 자금은 1조6000억달러다. 이 기간동안 MSCI 신흥국 지수는 2.6배 올랐다.

연준이 자산을 줄이면 신흥국으로 유입된 자금이 빠져나가는 건 불가피하다는 게 국제금융협회의 분석이다. 내년 연준이 2500억달러 규모의 채권 자산을 줄이면 신흥국에서 최소 260억달러 규모의 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길을 걷는다는 점이 불안감을 키운다. 도이체방크의 짐 레이드 전략가는 “양적완화로 풀린 돈을 다시 회수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라며 “그동안 자산 가격이 높아진 점을 고려했을 때 연준의 자산축소는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연준이 신중하고 완만한 자산 축소를 강조하고 있어 시장의 충격이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지만, 만약 유럽중앙은행(ECB)와 일본은행(BOJ)까지 자산 축소에 가세하면 충격이 상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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