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거사다리→갭투자로…구멍 뚫린 보금자리론

보금자리론, 대출실행 3년 지나야 사후검증
걸려도 1년 안에 팔면 돼 갭투자 악용
정부 “매년 검증은 행정비용 낭비로 불가능”
  • 등록 2021-08-20 오전 5:00:00

    수정 2021-08-20 오전 10:35:06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서울 외곽에 소형 아파트를 사기 위해 보금자리론을 빌려 쓴 A씨. A씨는 은행에서 ‘보금자리론을 이용해 주택을 산 후에 추가로 집을 사면 보금자리론 대출금은 즉시 환수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같은 처지인 친구 B씨는 보금자리론을 끌어다 집을 산 뒤 1500만원으로 지방의 저렴한 아파트에 갭투자(전세 끼고 집사기)했다. A씨는 “보금자리론 토해내고 길거리에서 자고 싶냐고 걱정했더니, ‘4년은 갭투자해도 괜찮다’고 하더라”며 “나만 바보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공시가 1억 미만 ‘집중공략’…“2년 뒤 천떼기로 판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잡겠다며 대대적 대출규제 정책을 쓰고 있지만, 검증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무주택 서민들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해온 ‘보금자리론’의 경우 대출 후 3년 뒤에나 다주택자 여부를 검증하고 있어 갭투자 수법으로 역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2018년 말부터 서민·실수요자 주거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보금자리론 이용자에 대해 사후검증제도를 도입했다. 정책금융상품인 보금자리론을 쓴 이용자라면 추가로 집을 사지 말라는 취지로, 추가 주택 보유 여부를 확인한다. 주택금융공사가 운용하는 보금자리론은 집값 6억원 이하, 연소득 7000만원(신혼부부 8500만원) 이하 세대를 위한 장기 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이다.

문제는 이 사후검증이 대출실행 후 3년마다 이뤄진다는 점이다. 사후검증에서 추가로 집을 산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주택을 처분할 1년의 유예기간을 준다. 이 때문에 보금자리론으로 산 집에서 실거주하면서 ‘3+1년’ 동안 갭투자에 나서려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부동산시장 한 관계자는 “요즘 보금자리론을 받아 집을 산 2030세대들이 여유자금을 활용해 지방에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를 전세 끼고 갭투자해 2채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추가로 사들인 집은 4년 안에만 팔면 되니 몇 천 만원 차익을 남기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현행 세법상 다주택자가 되면 취득세율이 두자릿수까지 오르지만, 공시가 1억원이 안되는 주택은 1.1%에 불과하다. 온라인부동산카페의 한 회원은 “시세 1억3000만원, 공시가 9800만원인 지방 A아파트의 전세가격은 1억2000만원”이라며 “차액 1000만원에 취득세, 복비 등 부대비용을 더해도 2000만원이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는 다주택자의 경우 중과세율을 적용해 무겁게 매기지만 규제지역을 피한 갭투자는 세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집값 상승세가 쉽사리 멈추지 않을 분위기여서 지방에서 1000만원 벌어 팔자는 이른바 ‘천떼기’ 갭투자 수요가 계속 있다”고 했다.

“1년마다 검증할 수도 없고…” 금융당국, 난감

주금공은 처분 유예기간이 지나도록 집을 팔지 않은 보금자리론 이용자에겐 즉시 대출잔금을 회수하는 동시에 향후 3년 동안 보금자리론을 이용하지 못하게 처벌 방편을 뒀다. 하지만 ‘3+1년’이면 추가 주택을 구매해 갭투자를 하고 처분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금융당국으로선 난감하단 반응이다. 대출 요건을 강화해 서민·실수요자 위주로 대출을 해주고 있는데도 이들이 여윳돈을 만들어 투자에 나선다면 막을 방도가 마땅치 않아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금자리론 취지와 맞지 않는 추가 주택 구매자를 찾기 위해 예컨대 1년마다 모든 대출자들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본다면 과도한 침해가 될 수 있고, 행정력 낭비도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가 아파트들에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이상과열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 등엔 정부 부처 합동의 부동산 감시기구에서 적발해 적절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정부가 집값을 잡지 못해 이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단 쓴소리도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집값이 완만하게 오르는 정상적인 주택시장에선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며 “제도 설계의 문제가 크다기보다는 비정상적인 부동산시장이 만들어낸 씁쓸한 코메디 같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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