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최대 69시간제 시대서 우리는 원할 때 더 쉴 수 있을까

국내 근로자 10명 중 5명은 연차유급휴가 다 못 써
업무량 과다 가장 큰 원인…작은 사업장일수록 열악
다가오는 주 최대 69시간제…휴식할 권리 보장 관건
OECD 최고 수준 과로 국가…“강력한 휴가 활성화 대책 필요”
  • 등록 2023-01-07 오전 7:00:00

    수정 2023-01-07 오전 7:00:00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업무 특성상 계속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52시간제도 때문에 일을 중간에 끊고 퇴근하게 된다. 그러면 흐름이 깨져 일을 진행하기 힘들다. 탄력적으로 집중해서 일하고, 연장근로 했을 때 오버된 시간을 저축했다가 근로자가 아프거나 경조사가 있는 등의 경우에는 그걸 활용 할 수 있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 같은 제도가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일 서울 금천구에 있는 3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을 방문했을 때 근로자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바쁠 때 더 일하고, 더 일한 시간을 저축했다가 원할 때 휴가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다.

“바쁠 때 더 일하고, 원할 때 더 쉰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52시간제 유연화의 목표다. 고용노동부는 ‘주 최대 69시간제’로 불리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확대 등 주52시간제 유연화를 추진하면서 ‘바쁠 때 더 일 한다’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원할 때 더 쉰다’를 실현에 대해선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이날 오후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상시근로자 25인의 제조업체 아진금형을 찾아 사업장을 둘러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휴가 제대로 못 가요”…연차 소진율 50%대로 추락

고용부가 지난해 말 발간한 ‘2021년 일가족 양립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의 연차유급휴가 소진율은 평균 58.7%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75.3%였던 2019년에 비해 17%가량 줄어든 수치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는 국가승인통계로서 지난해 8월 22일부터 11월 9일까지 실시됐고, 전국의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중 5070개의 표본사업체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연차유급휴가(연차)는 1년 동안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근로기준법상 유급휴가를 뜻한다. 1년 미만 근로자는 1개월 개근 시마다 1일씩 최대 11일, 1년간 80% 이상 출근 시에는 15일을 받을 수 있다. 최대 25일까지 지급된다.

연차를 다 쓰지 못한 이유는 ‘업무량 과다 또는 대체인력 부족’이 39.9%로 가장 많았다. ‘미활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23.2%, ‘연차 부여 일수가 많아서(근로자가 쓰지 않아서)’ 20.5%, ‘상급자 및 동료의 눈치’ 15.2% 순으로 나타났다.

사업체 규모별로 연차를 다 쓰지 못한 이유에 차이가 있었다. 5인~9인 소규모 사업체는 업무량 과다와 대체인력 부족이 45.8% 연차를 다 쓰지 못했다. 반면 300인 이상 대기업은 같은 이유로 연차를 다 소진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24.9%에 그쳤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대기업 근로자가 연차를 다 쓰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미활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30.8%) 때문이었다. 근로자가 연차를 다 소진하지 못했으면 회사에 연차 미사용 수당을 청구할 수 있다. 연차 미사용 수당은 1일 통상임금 × 잔여 연차다.

즉 연차를 다 쓰지 않은 대기업 근로자 3명 중 1명은 연차를 쓸 수 있음에도 돈을 더 받기 위해 연차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5~9인 사업체는 금전 보상 때문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20.6%에 불과하다.

근로자들이 개인 형편에 따라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편인지 4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 평균 점수는 2.8점으로 2019년(3.0점)과 2020년(2.9점)에 이어 하락 추세다. ‘매우 그렇다’와 ‘그런 편이다’를 합한 긍정 응답은 63.1%로 전년도(69.8%)보다 감소했다.

규모별로 5~9인은 평균 2.6점인 데 비해 300인 이상은 3.2점이었고, ‘매우 그렇다’의 비율도 23.2%와 37.3%로 차이가 컸다. 여전히 규모가 작은 사업체에서는 근로자들이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OECD 최고 수준 과로 국가…원할 때 휴가갈 권리 보장될까

이번 실태조사는 중소기업일수록 자의가 아닌 타의로 연차유급휴가를 제대로 쓸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열악한 휴가 환경은 더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52시간제 유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주52시간제는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에 최대 연장근로시간이 1주일 기준 12시간까지 허용되는 방식인데, 정부는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 분기, 반기, 연’으로 다양화할 방침이다. 이 경우 산술적으로 주당 69시간까지 일하는 게 가능해진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권고한 주52시간제 유연화 방안[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 같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노사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히는 게 목표다. 원할 때 더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고용부는 근로자가 원할 경우, 연장·야간·휴일근로 등에 대한 보상을 시간으로 저축해 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조차 자신이 원할 때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정부는 휴가 활성화 제도로 휴가 사용 만료 전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연차 사용을 안내하는 ‘연차휴가·사용 촉진제도’와 근로자가 20만원을 내면 정부와 사용자가 각각 10만원씩 보태 여행상품 포인트를 쌓아주는 ‘근로자 휴가지원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들도 모두 근로자가 근로시간 및 휴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만들어진 제도로, 업무량이 많아 주어진 휴가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선 효과를 내기 어려워 연차 소진율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2021년 기준 OECD 가입국 연간 근로시간. 우리나라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에 이어 5위(자료=OECD)
주52시간제 유연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을 더 늘리게 될 것이란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1915시간으로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근로시간이 가장 적은 국가인 독일(1349시간)보다 566시간이 길고, OECD 평균(1716시간)보다도 199시간이 길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럽은 총 근로시간 자체가 적은데다, 근로자들도 연장근로까지 하면서 일을 하는 문화도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사용자의 필요가 반영된 제도 개편으로 근로시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법정근로시간을 줄일 수 없다면, 적어도 유급 연차휴가 일수를 늘리는 등 실효성있고 구체적인 휴가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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