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155조원 쟁여놓은 애플이 18조원 빚낸 까닭

계좌인출 세금보다 대출이자 싸기 때문
제품·기술개발 혁신 접고 '돈놀이' 빠져
기업이 기업 않고 '금융화'한 작태 비난
…………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라나 포루하|532쪽|부키
  • 등록 2018-01-31 오전 12:12:00

    수정 2018-01-31 오전 7:49:38

‘애플이 스티브 잡스가 해오던 혁신을 멈추고 팀 쿡이 조정하는 금융에 빠졌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저자 라나 포루하는 유수의 글로벌기업이 기업인 걸 포기하고 금융으로 탈바꿈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그렇게 비대해진 금융이 경제성장을 돕기는커녕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거다(이미지=이데일리 디자인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5년 전쯤인 2013년 봄. 애플의 팀 쿡 CEO가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스티브 잡스를 대행하던 직함을 떼어내고 정식 CEO가 된 지 1년 6개월 남짓 됐을까. 내용은 다름 아닌 170억달러(약 18조원)를 차입해야겠다는 거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애플의 기업가치는 세계서 가장 높았다. 제품은 내놓는 족족 팔려나갔고 매달 30억달러(약 3조원)가 수익으로 꼬박꼬박 들어왔으니, 잡스의 빈자리가 무색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가지고 있던 현금이 산더미였다. 은행에 쌓아둔 돈이 무려 1450억달러(약 155조원)쯤 됐다. 그런데 왜 거금을 또 대출한다고 했을까. 돈이 묶여 있어서? 융통이 어려워서? 천만에.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빌리는 게 훨씬 수월하고 또 싸게 먹혔으니까.

이 계산은 애플의 재무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뽑아냈다. “우리 같은 블루칩기업은 저리의 회사채를 얼마든지 발행할 수 있어요. 굳이 목돈을 깰 필요가 없지. 은행계좌는 또 세계에 좀 많이 흩어져 있어야지. 그 돈을 미국으로 들여온다? 아이고 그 세금을 어찌 감당하려고.”

남의 회사가 돈을 빌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사실 그렇다. 대출을 받아 제품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쓰지 않는 이상 일반 소비자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의 글로벌비즈니스 칼럼니스트이자 부주필로 맹활약하는 저자가 볼 때 이는 단순치가 않다. 기업이 기업인 걸 포기하고 금융으로 탈바꿈해버리는 상황이니까.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는 데 금융이 없어선 안 될 요소인 거야 맞지만 기업까지 금융을 하자고 덤비는 꼴이니. 그렇게 비대해진 금융이 경제성장을 돕기는커녕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세금 아끼려다 혁신 말아먹은 ‘애플 돈놀이’

결국 애플은 170억달러를 빌리고야 만다. 엄청난 연방세금을 회피하고 있다는 추문을 무릅쓰고서. 하지만 더한 시달림이 뒤따랐다. 이는 잡스 방식이 아니란 거다. 제품으로 사람마음을 사로잡으면 돈은 저절로 들어온다는 확신이 잡스의 것이었다면 돈은 굴린 만큼 들어오는 것이란 게 쿡의 믿음이었다. 여기엔 쿡의 초조함이 작용했다. 2011년 이후 판을 바꿀 기술을 못 내놓자 정교한 돈놀이라도 해야겠다고 판단한 거다. 170억달러? 이것도 제품·기술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사주를 매입하고 배당금을 두둑이 지급해 지지부진한 주가를 공중부양시키자는 거였으니. 애플이 어떤 회사인가. ‘혁신의 아이콘’이 아니었나. 그런데 혁신이고 뭐고 다 제껴두고 ‘금융공학’을 응용한 돈놀이라니.

저자가 ‘배신의 애플’만 물고 늘어진 건 아니다. 금융공학 기업이라면 제너럴일렉트릭(GE)도 둘째라면 서럽다. GE는 아예 금융부문 자회사를 동원했다. GE캐피털이 나서 소비자 신용과 대출, 인수합병, 서브프라임모기지 거래 등 각종 금융 수완을 발휘했던 거다. 그러다가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도 제대로 맞았다. 화이자나 마이크로소프트도 저자의 레이더를 벗어나진 못했다. 금융거래·헤지·조세회피·금융서비스판매 등 이리로 저리로 굴려댔더니 우수수 돈이 떨어지는 현장. 어떤 항공사는 비행기티켓을 판매하는 것보다 유가등락위험을 헤지해 버는 돈이 더 많더란 고발도 했다.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저자가 처음부터 몰아세운 건 금융 자체가 아니다. ‘금융화’다. 금융과 금융적 사고방식이 기업·경제의 구석구석을 지배한 현상 정확히 그거다. 바로 여기서 입에 잘 붙지도 않는 책제목이 나왔다. ‘메이커스’(makers·만드는 자들)가 ‘테이커스’(takers·거저먹는 자들)에 예속된 경제 말이다. 단순화 하면 이런 거다. 경제를 키우는 자 따로, 경제를 망가뜨리는 자 따로. 버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결국 애플도, GE도 ‘금융화’에 깊숙이 말려든 꼴이다. 기업인지 은행인지 아직도 헷갈려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은행에 가하는 규제를 받기는 했나. 아니다. 돈은 챙기고 규제는 피했다. 그래서 경제가 병들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금융패권이 온갖 폐해를 부르고 있으니.

저자가 말하는 ‘메이커스’는 실질적인 경제성장에 나서는 사람·기업·아이디어다. 그렇다면 ‘테이커스’는? 그냥 먹기만 하는 쪽 전부다. 다수의 금융업자·금융기관에다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CEO, 정치인·규제담당자 등등. 이 두 갈래가 극명하게 나뉜 건 교육부터다. 저자는 미국의 경영대학원이 당최 산업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거품을 문다. 대신 손익계산서를 관리하는 법을 훈련하는 데 열을 올린다는 거다. 그 학생들이 누군가. 미래의 기업중역들이 아닌가.

△금융 ‘실물경제 조력자’로 돌려놔야

도입부터 애플로 던진 충격요법으로 저자는 ‘금융’을, ‘기업’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결론은 이거다. 투자에 소홀하고 금융노름에 빠졌다간 기업 말아먹기 딱 좋다는 것. 10여년 전 이 ‘망할’ 경로를 따른 휴렛팩커트(HP)를 중요한 사례로 뽑았다. 1999년 CEO가 된 칼리 피오리나가 기술개발 따위는 나몰라라 한 채 마케팅에만 돈을 쏟아붓다가 단 5년 만에 몰락의 길로 접어든 사연. 매년 포춘이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타이틀은 끝내 쇠락한 패잔병의 ‘왕년’이 돼버린 그것.

2008년 금융위기가 끝났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도 ‘웃기는 소리’다. 10년 만에 지표가 호조로 전환했다는 것부터 착시란 거다. 미국의 자본시장이 3배가량 커졌다지만 속을 보면 영 다르다. 비용을 줄이고 임금을 동결하고 연구를 안 한 거니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호조인 거다.

해결책 찾기가 쉽지 않겠다고? 오히려 단순하고 명확하다. 금융을 또 기업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거다. 금융은 실물경제의 조력자 수준으로, 기업은 실물경제의 주인공 위치로. 구체적으론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제한하고 금융이 목숨 걸고 지키는 부채를 줄이는 일이 있다. 세제개혁도 하고 규제개혁도 하고.

다만 저자의 욕심이 좀 과했다 싶다. “지난 수십 년 간 벌어진 일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을 들어야 할 평균적인 시민을 대상으로 썼다”라기에 지나치게 나간 듯하다. 어찌 됐든 한 가지는 전달했다. 거저먹는 자보다 만드는 자가 대우받는 세상이어야 한다는 것. 아니라면 최소한 팽팽한 힘의 균형만큼은 유지하자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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