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 사이 '10년 위기설' 솔솔…골드바·달러 수억씩 사재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마이너스 성장률에 경상수지마저 적자 나자
"다시 위기 올 수 있다" 우려 팽배
거래소 금값 연초 이후 급등..거래대금도 급증
"1200원 못 간 김에 목돈으로 달러 확보"
  • 등록 2019-06-10 오전 5:25:00

    수정 2019-06-10 오후 6:58:43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최정희 이슬기 김범준 기자] “4~5월부터 금 수요가 많아져서 예약하고 2~3주 후에 실제 금을 수령하는 경우가 많아요. 금을 제련하는데 시간도 걸리다 보니 물량이 부족할 경우 길게는 한 달도 걸려요. 적게 사면 5000만~6000만원하는 골드바 1kg짜리 한 개 사가고 많게는 5억~10억원씩 사가요. 10kg, 20kg 단위로요. 자산가 많은 지역은 금이 동났을 거에요.”(송재원 신한은행 PWM서초센터 부지점장)

수백 억원 이상의 자산가들이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달러 사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재기 열풍의 기저에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처럼 또 다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걱정이 깔려있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분쟁은 장기화하는 모양새고 수출감소로 믿었던 경상수지마저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자 10년 마다 큰 위기가 온다는 일명 ‘10년 위기설’이 자산가들 사이에서 급속하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송재원 부지점장은 “자산가들은 돈이 많은 만큼 일반인보다 걱정이 많은데 경제가 왜 이러냐, 나라 망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다”며 “그래서 부가가치세나 매매수수수료를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금 실물을 사서 은행 대여금고에 보관하고 일부는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산가들의 돈이 금이나 달러 등 안전자산에 몰리면서 가격도 치솟고 있다.

억 단위로 금, 달러 확보나선 자산가

9일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온스당 금 현물가격은 1340.65달러로 연초 이후 4.5%나 급등했다. 한국거래소(KRX) 금 시장에서 거래되는 금값은 달러 강세 영향에 더 큰 폭으로 치솟았다. 국내 금값은 세계 금시세에 환율을 곱해 결정된다. 그 결과 7일 1g당 5만800원, 1돈당 19만500원에 거래됐다. 2016년 7월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올 들어 9.9%나 급등한 것이다.

금 거래도 크게 늘었다. KRX 금시장에서 거래된 금 거래대금은 올들어 5월까지 월 평균 200억7700만원으로 작년 하반기(7~12월)보다 9.4% 늘었다. 자산가들이 금 확보 창구로 활용하는 은행권에서도 골드바 판매가 크게 늘었다. 판매통계를 공개하지 않는 신한은행을 제외하고 KB국민·우리·NH농협·KEB하나은행 등 4대 주요 은행의 지난달 골드바 판매액은 160억6000만원으로 최근 1년간 월별 평균 판매액의 세 배를 넘어섰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격화,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데다 각종 경제지표가 나빠진 지난달 금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달러 값도 올랐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말 1190.9원까지 올라 연초 이후 6.7% 상승세를 보였다.

과거 위기와 공통점…경상적자에 충격

이처럼 자산가들이 금과 달러 확보에 나선 데에는 한국 경제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 역시 마이너스 0.4%(전분기비)로 10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4월 경상수지가 7년만에 적자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적자전환 사실은 이달 초 공식 발표를 통해 확인됐지만 수출 둔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외국인이 챙길 배당금액이 9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추정이 나오면서 4월 초부터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이 제기됐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직전에도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산가 상당수가 60~70세로 고도의 개발시대의 끝에 찾아온 외환위기를 피부로 겪었고, 이어 금융위기까지 경험한 만큼 위기 가능성을 크게 받아들이는 상황이다.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를 훌쩍 넘어 방어막이 탄탄하다 해도 달러, 금 등 실물 안전자산을 확보할 수 있을 때 쟁여둬야 한다는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세컨더리보이콧…곳곳에 불안요인

여기에 정부와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불안요인으로 남아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실질 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단위를 낮추는 것을 말한다. 실질 가치는 그대로지만 단위가 낮아진 만큼 심리적으로는 가치가 떨어졌다고 느끼기도 하고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경우 실제 화폐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송재원 부지점장은 “나이가 많은 고객들은 과거 ‘환’에서 ‘원’으로 화폐개혁을 했을 때 기억을 갖고 있다보니 실제로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치기도 한다”며 “금 통장이나 금 관련 금융상품 보다 금 실물로 사야 유사시에 들고 어디든 갈 수 있지 않겠냐 하며 안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달러를 사는 이유도 비슷하다. 김현섭 국민은행 도곡스타 프라이빗뱅킹(PB)센터 팀장은 “자산가들은 대내적으론 마이너스 성장률, 경상수지 적자에, 대외적으론 무역분쟁으로 불안 심리가 커 원화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산의 일부를 외화, 실물로 바꾸려는 니즈가 크다”며 “지난달 환율이 1200원에 육박하자 달러를 더 많이 사뒀어야 했다는 후회를 많이 했는데 최근 환율이 소폭 하락하자 목돈으로 달러를 사놓자는 심리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억원 단위로 달러를 매입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위기가 터지면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 외화 인출 제한 등이 생길 것을 우려해 자산가들이 규제 예외인 외국계 은행에 자금을 예치해두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현섭 팀장은 “일부는 미국이 이란, 북한 제재 등과 관련해 국내 금융회사를 상대로 자금인출을 제한하는 세컨더리 보이콧(2차 제재)을 걱정한다”며 “아니라고 말을 해도 걱정이 심해 대안으로 외국계 은행에 자금을 예치하려는 경향도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이 달러 환전에 대한 제한에 나섰다는 소식도 불안감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가들은 뉴스에 더 민감한데 최근 중국이 연간 달러 환전에 상한선을 두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중국에서도 달러가 급격하게 소진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가뜩이가 위기설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중에 환전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달러라도 확보해놓자는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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